“죽도록 일해도 낮은 임금과 차별뿐”(上) 입국자 2人 한국 체류기
“갖은 욕설 등 인간 이하의 대접 받느니 고향으로 돌아가 마음 편히 일하고 싶어”
회사 일방 해고로 미등록 노동자 신세“누구보다 열심히 일했는데…” 하소연20090817003951
‘산업기술연수생 제도’의 문제점을 개선하기 위해 2004년 8월 시행된 ‘고용허가제’가 17일로 5년이 됐다. 이주노동자에게도 ‘근로자 신분’을 부여한 고용허가제를 통해 그동안 한국에 들어온 외국인 노동자 숫자는 크게 늘었지만, 이들이 처한 근로환경은 그다지 개선되지 않았다. 사업장 이동 횟수 제한, 일방적인 사업장 배치 탓에 이주노동자들은 노동권 및 인권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국가인권위원회와 함께 고용허가제 실태를 2회에 걸쳐 긴급 점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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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리랑카인 말라와씨

지난해 6월 부푼 꿈을 안고 고용허가로 한국에 들어온 스리랑카인 말라와(26)씨는 이달 23일 자진출국할 예정이다. 체류기간(3년)을 절반도 못 채우고 짐을 싸는 것이다.

지난 15일 경기 포천시 섬유공장 내 기숙사에서 만난 말라와씨는 시원섭섭한 심정을 밝혔다.

스리랑카에서 트럭 운전기사로 일하며 40만원(한화 기준)을 벌었던 그는 “170만원의 수입을 얻을 수 있다”는 주변의 말을 듣고 한국행을 결심했다. 1년6개월 동안 대기하다 어렵게 한국에 들어왔지만 ‘장밋빛 꿈’과는 거리가 멀었다. 최저임금에 해당하는 85만원을 지급한다고 했지만, 계약서에는 없는 ‘수습기간 3개월’을 명목으로 76만원만 받았다. 또 회사에서는 8시간 노동제가 아닌 2시간 추가근무 및 24시간 맞교대 등을 조건으로 계약서를 다시 작성할 것을 요구했다. 점심시간 1시간도 보장되지 않았다.

한국말이 서툴러 갖은 욕설을 들어야 했고, 한국인들의 불친절에 설움도 많이 겪었다. 말라와씨는 “우리도 인간인데 왜 이렇게 심하게 대하는지 이해할 수 없고, 한국이 싫어졌다”고 토로했다.

1년이 조금 지나자 적응도 되고 임금도 125만원을 받았다. 덕분에 생활비를 제외한 90만원을 아내에게 송금할 수 있었다.

하지만 하루 12∼13시간 일에 낮은 임금은 그를 버티지 못하게 만들었다. 내년에 아들이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사정 등을 감안해 그는 가족 품으로 돌아가기로 결심했다.

그는 “귀국해서 열심히 일하면 80만원은 벌 수 있을 것”이라며 “이런 취급을 받느니, 고향에서 마음 편하게 일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1년간은 그만두지 못하고, 본인의 잘못과 관계없이 회사를 그만둘 경우 2개월 안에 무조건 직장을 구해야 하는 것은 이주노동자에게는 불리한 조항”이라며 “한국에 대한 서운함은 이제 없어졌지만 이주노동자에 대한 배려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바람뿐”이라고 강조했다.

■몽골인 잉카이씨

지난 16일 서울 프레스센터 3층에 위치한 ‘서울글로벌센터’ 다문화팀 상담실. 지난해 1월 고용허가로 입국한 몽골인 잉카이(가명·34·여)씨는 ‘미등록 노동자’로 전락한 처지를 하소연했다. 그는 일방적으로 해고 통보를 받았고, 회사 측에서 이를 노동부 등 관계당국에 알리지 않아 미등록 노동자 신분이 됐다.

잉카이씨는 몽골 수도인 울란바토르에서 무역업을 하며 남부럽지 않은 삶을 살았다. 몽골 사회에선 대학을 졸업한 엘리트였다. 한국 드라마 등 ‘한류 붐’이 일면서 그는 2008년 1월 ‘코리안 드림’을 꿈꾸며 한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잉카이씨는 경북 경주의 자동차시트 공장에서 처음 일자리를 얻었다. 언어와 음식 문제만 빼면 불편한 것은 없었다. 계약서와 달리 78만원을 받고, 기숙사도 제공되지 않았지만 그럭저럭 지낼 만했다.

그는 8개월 만에 먼저 한국에 온 남편과 같이 살려고 경기 포천의 주방용품 공장에 입사했다. 하지만 회사 측은 계약서 작성을 미뤘다. 91만원 조건은 식비 공제 명목으로 85만원만 지급됐고, 건강보험도 가입해주지 않았다. 오전 8시에서 오후 7시까지 장시간 노동도 강요당했다.

결국 4개월 만에 충북 옥천의 자동차시트 공장에 남편과 함께 입사했다. 기본급 96만원, 오전 8시30분에서 오후 11시까지 연장근무로 150여만원을 받았다.

문제는 지난 6월 말 터졌다. 회사는 “작업물량이 줄었으니 며칠 쉬면 다시 부르겠다”고 통보했다. 이후 회사에서 지속적으로 연락해 그때마다 일을 했다. 자신이 해고된 사실은 꿈에도 몰랐다.

하지만 이달 8일 몸이 아파 병원에 간 결과 “건강보험 대상이 아니다”는 말을 들었다. 이상하게 생각한 잉카이씨는 고용지원센터에 문의한 뒤에야 자신이 해고됐고, 7월 월급도 다른 회사 명의로 지급된 사실을 알게 됐다. 고용지원센터에서는 “이미 사업장을 3번 옮겼기 때문에 횟수 제한에 걸렸다. 다른 구제 수단은 없다”고 말했다. 회사 측에서 해고 당시 알려줬다면 한달 내에 직장을 구해 고용허가 신분을 유지할 수 있었다.

잉카이씨는 최근 일도 그만 뒀다. 중앙노동위원회, 국가인권위원회 등에 구제요청을 할 계획이다. 그녀는 “결근도 하지 않고, 누구보다 열심히 일했는데 억울하다”며 “미등록 신분으로 지낼 생각을 하니 막막하고 불안하기만 하다”고 고개를 떨어뜨렸다.


“現제도 미등록 노동자 양산· 인권침해도 많아 개선 필요”문경란 인권위 상임위원20090817003952
문경란(50·사진) 국가인권위원회 상임위원은 “고용허가제가 산업연수생 제도보다는 진일보했지만, 구조적으로나 운영상의 문제점이 드러나 개선이 필요하다”고 평가했다.

문 위원은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고용허가제가 취지와는 달리 미등록 노동자를 양산해내고 있고, 인권 침해의 요소도 내포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당사자인 외국인 노동자 개인과 사업주 간에 근로계약을 맺는 게 아니라 국가 대 국가가 MOU를 체결하다 보니 정확한 근로조건 정보가 제공되지 않는다”며 “이 과정에서 사업장을 이탈해 미등록 노동자로 전락하는 경우가 발생한다”고 말했다.

문 위원은 사업장 변경 사유가 사업주의 계약 해지, 휴업·폐업 등으로 한정되고 변경 횟수가 제한된 것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는 “임금 체불, 근로계약을 위반해서 지급하는 경우, 폭행당하는 등 근로자에게 정당한 사유가 있을 때 사업장 변경을 하도록 해야 한다”며 “사업장 변경을 과도하게 제한하는 것은 근로권을 침해하며 결국 사업장을 무단이탈해 미등록 노동자로 전락시키는 결과를 만드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실제 인권위는 지난해 1월 이 같은 내용을 골자로 하는 고용허가제로 입국한 근로자 사업장 변경 개선 권고를 내기도 했다.

문 위원은 또 제도 운영 과정에서 드러나는 인권 침해 문제도 개선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성희롱, 폭력, 구타, 상상을 초월하는 장시간 노동, 주거 문제 등 인권침해를 당했다는 진정이 올라오곤 한다”며 “고용허가제도 자체가 가진 문제는 아니지만 운영과정에서 인권이 유린되는 일이 많이 나타난다”고 말했다.

그는 “국가가 필요로 하는 노동력을 합리적이고 합당하게 이용하기 위해 만든 제도가 고용허가제라면 노동자들에게도 그에 합당한 대우를 해줘야 한다”며 “노동력만 활용하고 기본적인 인권도 제대로 지켜주지 않는 구조로 간다면 사회 갈등을 유발하는 심각한 문제”라고 강조했다.

글=이태영, 사진=송원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