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장 속 ‘88만원 세대’의 새로운 인생  


[101호] 2009년 08월 17일 (월) 13:59:39 고동우 기자 intereds@sisain.co.kr  



지난 4월 정규직으로 전환된 경주 인지컨트롤스 노동자 박영중씨(30)는 ‘88만원 세대’의 전형적인 삶을 살아오고 있었다. 군 제대 후인 2004년부터 직장을 구하고자 했으나 아무리 찾아도 그에게 ‘좋은 일자리’는 없었다. 한번 빠지면 웬만해선 헤어나올 수 없는 ‘비정규직 인생’의 시작이었다. “정규직이 되고 싶었지만 학력도 기술도 없는 나를 뽑아줄 곳은 없었다. 결국 비정규직으로라도 일을 해야 했고, 지난 6년 동안 내 의사와 상관없이 네 번이나 직장을 옮겼다.”

하지만 이제는 그런 걱정을 할 필요가 없다. 그는 “노조에서 조합원 가입을 권유할 때 혹여 불이익을 받지 않을까 잠시 고민했는데 지금은 정말 잘했다 싶다. 나에게 믿음을 줘서 정말 고맙다. 결혼 준비, 자녀 계획, 미래 설계 등 내 인생을 스스로 만들어가는 게 가능해졌다”라고 뿌듯한 표정을 지었다.

    
ⓒ전문수
맨 왼쪽부터 김관식씨, 박영중씨 그리고 이주 노동자 로델 씨.
올해 입사 3년 만에 정규직이 된 타타대우의 김관식씨는 지난 6월 난생처음 ‘1박2일 상경투쟁’라는 것에 참석해봤다. 민주노총이 주최한 쌍용자동차 연대 집회였는데 이 역시 ‘삶의 전환’과 관련이 있었다. “비정규직일 때는 눈치가 보여서 노조 활동에 적극적이지 못했다. 하지만 이젠 좀 자유롭다. 내가 정규직이 될 수 있었던 이유도 그렇지만 ‘연대’라는 게 왜 중요한지 조금은 알고 있다. 힘닿는 대로 참여도 할 것이다.”

같은 타타대우의 정광진씨(30)는 지난 2005년 여자 친구 집에 인사를 드리러 갔다가 장인으로부터 “자네 정규직인가?”라는 질문을 받고 깜짝 놀란 적이 있다는 일화를 전했다. “정규직으로 전환(2004년)됐을 때는 임금이 좀 오르는 것 말고 그게 무슨 의미인지 몰랐다. 그런데 세상이 사람을 평가하는 주요 기준 같은 것이더라. 난 결혼을 했지만, 친구들한테 ‘왜 결혼 안 하냐’ ‘애 안 낳느냐’고 물으면 대부분 ‘정규직이나 되고 나서…’라는 답이 돌아온다.”

씁쓸한 이야기지만 현실은 현실이었다. 타타대우는 이런 정규직화 제도 덕분에 군산을 비롯한 인근 지역에서 취직을 원하는 젊은이들에게 ‘선망 기업’이 되어 있을 정도였다.

한국보그워너씨에스의 필리핀 이주 노동자 로델 씨(29)는 앞으로 3년간의 고용 보장으로 ‘미래를 위한 준비’를 할 수 있게 되었다며 기쁜 얼굴을 감추지 못했다. 현재 이탈리아에서 일하고 있는 아내와 함께 고국에서 작은 사업을 하는 게 꿈인 그는 “형제들(한국 노동자)의 도움 없이는 불가능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