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이를 넘어서는 연대만이 해결책"필리핀 이주민 공동체 이끄는 존스 갈랑씨 인터뷰
  글쓴이 : 노동목사     날짜 : 09-08-26 00:44     조회 : 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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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 머무는 필리핀 출신 이주민이라면 모두 아는 덩치 큰 아저씨가 한 사람 있다.

한국에 십 년 째 살면서 결혼이주자들과 이주노동자들의 자력화를 돕는 존스 갈랑 씨가 그 주인공이다. 이런저런 토론회에서 맞닥뜨림을 계기로 인터뷰 약속을 잡아 24일 그가 활동하는 오산이주노동자센터를 찾아갔다.    

  갈랑 씨가 한국에 온 것은 1998년이었다. 당시 아시아에 불어닥친 금융위기로 한국뿐 아니라 필리핀도 큰 어려움을 겪고 있었는데 그중에서도 해외에서 일하고 있는 필리핀 이주노동자들이 그 직격탄을 맞았다.

아시아 각국의 경제상황이 악화되면서 일순위로 감축대상이 됐던 이들이 이주노동자들이었기 때문이다. 한국에 있던 필리핀 노동자들의 경우도 위기를 맞아 고국으로 돌아가야 하는 상황에 놓인 가운데 갈랑 씨는 되려 한국에 왔다.

“필리핀 노동자들을 위해 한국에 왔죠”

노력의 결실이 카사마코(Kasamako)였다. 필리핀어로 ‘친구’를 뜻하는 이 말은 한국에서 따로 떨어져 활동하던 10여 개 필리핀 이주노동자 그룹을 결집시키는 역할을 했다. 서울, 광주, 의정부, 대구에 이르기 까지 다양한 도시의 회원을 가진 전국적 단위의 필리핀 공동체가 탄생한 것이다.

3년간 카사마코 생활을 하며 필리핀 국내정치에 대한 목소리를 높이기도 하고 한국내 고용허가제의 문제점을 지적하며 거리로 나서기도 했다. 그러던 그가 2001년 필리핀으로 돌아갔다. “충분히 필리핀 노동자들의 자치적인 역량을 키웠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귀국한 이후 그는 개신교 목사가 되기로 마음먹었다. 절대다수가 가톨릭인 필리핀에서 왜 개신교 목자의 길을 택한 것일까?

“이주노동자들과 함께한 경험 덕분이었죠. 당시 한국에서 이주노동자를 돕는 대다수의 단체가 교회였거든요. 활동하면서 자연스럽게 교회와 연대하고 접하면서 개종하게 됐어요.”

그렇게 해서 필리핀그리스도연합교회(UCCP)에서 1년 동안 신학과정을 밟았다. 그러나 한국과의 인연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UCCP에서 갈랑 씨의 활동경험을 듣고 그를 선교사로 다시 한국으로 보낸 것이다. 2002년 돌아온 그는 예전부터 같이 활동하던 장창원 목사를 따라 오산이주민센터와 다솜교회에서 활동하기 시작했다.

오산에서 활동하면서 이주노동자 뿐만 아니라 결혼이주자의 삶도 접하게 된 그는 그들의 자립화를 돕기 위한 활동도 병행하기 시작했다. 최근에는 오산에서 결혼 이주민들을 위한 공간 건립에 나섰다.

“결혼이주자들이 서로 의논할 일이 있을 때는 회의할 장소가 필요하고 이혼 등의 사유로 집에서 나왔을 경우 갈 곳이 필요하기도 하잖아요. 한국에서 살아가기 위해 다양한 재교육이 필요한 것도 사실이고요. 이렇게 다양한 상황에 대비한 이들만을 위한 장소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2010년 건립을 목표로 하는데 기금 마련을 위해 로또를 발행하기도 했어요. 사행성이 있는게 아니라 그저 결혼이주자들이 각자가 사명감을 가지고 로또를 팔러 다니니 그것도 이들의 결집을 위해 좋은 것 아니겠어요?”

평등하진 않더라도 동등하게

한국 생활을 오래한 갈랑 씨에게 필리핀에서 온 결혼이주자와 이주노동자를 대표해 그들이 겪는 어려움에 대해 물었다.

결혼이주자의 경우 “남녀평등과 관련한 문화의 차이가 크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필리핀의 경우 부부가 완전히 평등하게 삶을 꾸리진 않지만 여자가 요리를 하면 남자가 설거지를 하는 식으로 서로 동등한 역할 분담이 있는데 필리핀 결혼이주여성의 경우 그들이 모든 일을 도맡아 한다”는 것이다.

갈랑 씨의 문화충격은 놀랄 일이 아니다. 이미 여성 대통령을 두 명이나 배출하고 매년 세계경제포럼이 발표하는 남녀평등지수 (Gender Gap Index) 부문에서 10위안에 드는 필리핀으로써는 100위권 근처를 맴도는 한국의 현실을 받아들이기 힘들었을 것이다.

이주노동자의 경우 “차별이 가장 심각한 문제”라고 그는 봤다. 추석이나 설날에 보너스를 받지 못함은 물론 쉬지도 못하는 이주노동자들은 눈앞에서 벌어지는 차별에 울분을 삭혀야 한다는 것이다.

인간의 목숨을 다루는 병원의 경우도 마찬가지여서 “돈이 없으면 아예 로비에서 들여보내지도 않더라”는 그의 경험은 필리핀 이주노동자들이 한국에서 벌어지는 여러 형태의 차별에 대해 가슴 속 깊은 울분을 지니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렇다면 갈랑 씨는 고용허가제는 어떻게 보고 있을까. 그의 대답은 간결했다. “한국의 비정규직법이 있잖아요, 그것과 같아요.” 노동자의 지위를 제대로 얻지 못한다는 측면에서 고용허가제 하의 이주노동자들이 비정규직 노동자들과 비슷한 신세라는 것.

“비정규직 노동자의 경우 2년을 일해야 정규직이 되는데 고용주가 1년 11개월째 되는 날에 맘대로 자르고 그러잖아요. 그런 것처럼 이주노동자들도 3년이 지나면 사장님이 이들을 더 고용할 지 말지를 결정해요. 자르면 그만이고요. 이렇게 본질이 같은데 비정규직 노동자와 이주노동자가 연대해야 하지 않겠어요?”

결국, 연대해야

결국 갈랑 씨가 말하는 핵심은 서로 달라 보이는 사람들의 연대에 있었다.

“세상의 더 나은 곳으로 만들려는 노력들은 번번히 소수의 가진 자들에 의해 좌절됐잖아요. 소수의 엘리트들이 다수를 분열시키고 억압하는 곳에서는 모두 단결해 싸우는 방법 밖엔 없다고 생각해요.”

물론 연대는 쉬운 일이 아니다. 서로 생각과 처한 위치가 다를뿐더러 때로는 언어와 문화가 다르기도 하다. 이러한 다양한 차이를 메울 수 있는 깊고 너른 연대는 어떻게 가능한 것일까. 갈랑 씨는 연대의 실마리를 “자신이 처한 현실의 본질을 볼 수 있어야”하는 통찰력에서 찾아야 한다고 본다. 더 큰 변화는 이러한 통찰력을 바탕으로 한 다양한 세력의 연대에서 오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