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회 신고만으로도 퇴직금을 쟁취하다!

이주노조 경기중부지부 조합원 R씨는 퇴직금 262만원을 체불당했다. 경기 의왕시에 소재했던 (주)제일전자는 대부분의 중소 제조업체가 그렇듯 밤낮으로 이주노동력을 이용했던 사출 성형 공장으로, 재작년에 화성으로 확대 이전하였다. 이 공장에서 R씨는 2003년 7월부터 2005년 9월까지 일한 만큼에 대한 퇴직금 일체와 12일치에 달하는 월급을 체불당했다. 이 공장에서 전에 일했던 다른 이주노동자들 역시 3년 이상 하루도 쉬지 않고 일을 했는데 사장은 퇴직금을 주지 않기 위해 온갖 거짓말을 일삼았다. “일을 했다 안 했다”는 식의 근거 없는 악선동은 기본이요, "우리 사업장은 5인 이하 사업장"이라면서 눈에 뻔히 보이는 거짓말로 발뺌하다가 결국 퇴직금 일체를 인정하고 지불한 것이다. R씨의 경우도 마찬가지로 “내가 똑똑히 기억하는데 이 친구는 일을 계속 한 적이 없다”는 식의 교묘한 거짓말로 술수를 쓰다가 결국 공장 앞에서 한 달간의 집회 신고에 뒷통수를 맞았다. 집회 신고를 한 바로 다음 날, (주)제일전자의 대표 김찬회는 한 마디 항변도 없이 고소만은 취하해달라며, 조합원 R씨가 일한 기간에 대해 인정하고 퇴직금 전액을 지급했다.

모든 노동자들에게는 일하기 위해 밥을 먹고, 휴식을 취하며 자기 충전을 할 수 있는 시간이 보장되어야 한다. 대부분의 이주노동자들은(정주노동자들도 마찬가지지만) 이 마저도 강탈당하고 있으며 기본적으로 받아야 할 액수에 훨씬 못 미치는 임금을 받고, 이조차도 제대로 지급받지 못하는 사례가 태반이다. 저임금에 장시간 노동은 사장에게 가장 확실하고 효과적인 이윤을 만들어준다. 하루도 빠짐없는 야간 노동으로 사장의 이윤을 만들어주는 이주노동자는 자신이 노예가 아니라는 것 정도(!)는 자신이 꾸준히 받는 임금으로 확인한다. 대부분 아무리 많은 작업을 해도 좋으니 월급이라도 안정적으로 받을 수 있는 곳을 원하기 때문에 사장과 이주노동자 사이의 역관계는 더욱 이주노동자들에게 불리해질 수밖에 없다. 당시 사장의 현혹적인 거짓말에 기가 막혀 하던 R씨는 “단순히 퇴직금 몇 푼 때문이 아니라 내가 거지 취급당하는 것에 화가 난다. 이주노동자를 깔보는 이런 작태에 맞서 끝까지 싸우겠다”고 하였다. R씨의 퇴직금 쟁취 사례는 비록 집회 신고만으로 끝나긴 했으나 현장에서의 노동 권리를 자기 요구와 행동으로 찾겠다는 조합원 스스로의 투쟁으로 진행되어 왔다.

비단 이런 경우만이 아니라 한글을 모르는 이주노동자들의 사정을 활용해 퇴직금을 임금에 포함시켜주겠다는 식으로 이야기하다가 퇴직금을 지급하지 않는다든지, 아예 퇴직금을 받지 않겠다는 노예 계약으로 근로 계약을 한다든지, 혹은 퇴직금을 주지 않기 위해 계약 기간 만료되기 전에 해고하는 사례는 이주노동자들에게 엄청나게 많다.‘중소기업이 다 그렇다’는 식으로 이주노동자들을 노예 부리듯 하는 데 익숙해 있는 사장들은 이주노동자들을 결코 자신의 권리를 당당하게 주장할 수 있는 노동자로 바라보지는 않는다. 이러한 인식, 그리고 인식이 구조로 정착되어 있는 현실 속에서 이주노동자들은 사장이 시키면 시키는 대로 일하는 것만으로, 부당한 대우에 침묵하는 것만으로 이 지긋지긋한 현실에서 단 한 걸음도 나아갈 수 없으리라는 것을 알고 있다.

이번 R씨의 퇴직금 쟁취 사례를 통해 이주노동자들은 현장에서의 권리가 침해될 때는 항의의 표현으로 집회라도 벌이는 행동들이나, 수위가 심할 때는 집단적으로 일을 하지 않으며 공장 운영을 압박할 수 있는 행동들을 주체적으로 조직할 수 있다는 교훈을 얻어야 한다. 이는 사장과의 협상력을 키우기 위한 것이나 얼마만큼 압박하면 얼마만큼 받아낼 수 있다는 속물적 교훈이 아니라, 높은 사회적 장벽에 가로 막혀 있는 이주노동자들의 권리는 이주노동자 스스로 투쟁해서 쟁취한다는 원칙적 교훈을 되새기기 위함이다.

그런 면에서 최근 이주노조 설립신고반려를 취하하라는 고등법원의 판결은 이주노동자들의 투쟁에 소중한 성과로 작용할 것이다. 언론에서 떠들어대는 것처럼 우리 이주노조는‘불법체류자들의 노동조합’이 아니라, 현장에서 당당하게 일하고 있는 이주노동자의 노동조합, 이주노동자 고유의 권리와 요구를 내걸고 일상적 투쟁을 전개해나갈 수 있는 노동조합으로서 합법적으로 인정받아야 한다. 정주노동자(한국노동자) 역시 이주노동자들을 적극적으로 조직할 수 있는 계획들을 제출해야 한다. 사업장과 지역적 차원에서 이주노동자들의 노동 실태를 조사하고 조합 가입(산별/단위노조)을 독려하며, 그들의 요구를 면밀히 파악하여 이주노동자들의 독자적 이해와 요구를 최우선으로 한 조직 활동, 이주노동자들의 권리를 위한 일상적 투쟁을 함께 조직해야 한다.

설립 신고 반려는 하나의 시작일 뿐이다. 완벽하게 승소하는 것은 법정 밖에서 우리가 얼마 만큼의 조직과 투쟁으로 우리의 힘을 확대하느냐에 있다. 이주노동자들의 일상적인 노동과 삶 속에서의 투쟁들을 조직적으로 계획하고 이 속에서의 권위와 지도를 인정받을 수 있는 조직이 이주노조가 되어야 한다. 이주노조가 이주노동자들의 이해를 대변할 유일하고 합법적인 조직으로 인정받는 것은 현장에서 일하는 40만 이주노동자들 모두가 노동3권을 당당하게 누릴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주노동자들의 주체적 투쟁으로 현장 권리 쟁취하자!
이주노조 즉각 합법화하라!


서울경인이주노조 경기중부지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