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황 틈타‘외국인혐오증’우려
2009-01-06 오후 1:25:26 게재

“일자리 빼앗고 범죄 는다” 인터넷 등 일부서 여론 몰이
단속만 하는 정부도 부추겨 … 포용 않을땐 사회적 갈등

국내 체류 외국인들에게 불만을 표출하고 적대시하는 ‘외국인 혐오증(제노포비아 Xenophobia)이 경제불황을 타고 확산될 조짐이다. 특히 인테넷 포털 등 일부에선 외국인 노동자를 ‘일자리를 뺏고 범죄나 저지르는 이방인’으로 몰아세우며 외국인 혐오증을 조장하는 모습까지 보이고 있다.
그동안 외국인 노동자는 ‘사회적 약자’로 인식돼 왔지만 최근 경제불황이 심해지면서 외국인들을 집단적 불만해소의 희생양으로 삼으려는 게 아니냐는 우려마저 나올 정도다.
또 외국인 범죄 축소를 명분으로 불법체류 외국인을 일방적으로 추방하는 단속위주 정부정책도 외국인 혐오증을 부추기고 있다는 분석이다.

정영섭 이주노동자조합 사무차장은 “최근 일부에서 경제위기를 빌미로 취약계층과 사회적 약자에게 불만을 강하게 표출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는데 외국인 노동자가 주 대상인 듯 하다”면서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포용 없이 일방적으로 희생을 강요하면서 단속위주의 정책을 고집할 경우 내외국인간 사회적 갈등이 커질 수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우리나라의 경우 외국에 비해 외국인 혐오증이 심각하지 않지만 최근 같은 분위기라면 수년 내 다문화가정 자녀들마저 외국인 혐오증의 피해자가 될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외국인 혐오증 왜 커지나 = 국내 거주 외국인들이 숫적으로 크게 증가한 게 일차적 원인이다. 법무부 집계에 따르면 2005년 74만명이었던 외국인 체류자는 지난해 117만명으로 3년새 2배 가까이 늘었다. 숫자가 많다보니 취업자도 늘고 범죄자도 증가할 수밖에 없다. 게다가 외국인 범죄 가운데 ‘보이스피싱’ 같은 금융사기 범죄들이 늘어나면서 사회적 인식은 빠르게 나빠졌다는 평가다.
그러나 무엇보다 경제불황이 외국인 혐오증을 확산시키고 있는 가장 큰 이유로 꼽힌다. 지난해 하반기를 고비로 금융위기에 경제불황이 겹치면서 외국인 노동자들을 서민층 일자리를 빼앗아 가는 주범으로 몰아가는 사회적 분위기가 만들어지고 있는 탓이다.

일부 반외국인 단체는 특히 인터넷상에서 조직적으로 반외국인 정서를 조장하고 있다. 대형포털 사이트 ‘불법체류자 추방’ 카페에선 불법 체류자들이 대거 체포됐다는 내용이 좋은 소식으로 올라와 있고 ‘다문화 정책반대’ ‘외국노동자대책본부’ 등의 웹사이트도 “대한민국이 얼마나 무서운 나라인지를 보여줘야 한다” 등의 외국인 혐오증을 부추기는 내용 일색이다. 이들은 외국인들이 범죄의 온상이며 저소득층 일자리를 뺏어 간다는 논리를 펴고 있다. 더욱이 이들은 지난달 30일엔 서울 종로구 마로니에 공원에서 ‘불법체류 외국인 강력 단속과 외국인 범죄척결 범국민대회’를 여는 등 인터넷 밖으로까지 나와 활동을 펴는 등 반외국인 운동을 강화하는 모습이다.

지난달 초 법무부 출입국관리소와 경찰이 합동으로 경기도 마석가구단지를 중심으로 대대적인 외국인 불법체류자 체포에 나서는 등 정부의 단속위주 외국인노동자 정책도 문제다. 정부는 2003년 6100여건이던 외국인 범죄가 불법체류자 증가 때문에 2007년 1만400여건으로 급증했다고 보고 있다. 외국인 근로자들이 늘수록 범죄도 늘어난다는 논리인데 반외국인 단체들의 주장과 맥을 같이하고 있는 셈이다. 여기에 지난해 말 서울대에서 외국인의 성추행 사건이 일어나면서 젊은층을 중심으로 외국인 혐오증은 급속 확산되고 있다. 서울대 여학생이 학내 인너넷 게시판에 ‘학교 셔틀버스에서 인도 사람인 듯한 외국인 남학생에게 성추행을 당했다’는 내용의 글을 올린 뒤 이 게시판엔 인도인들을 추방해야 한다는 등의 원색적인 욕설과 비난성 글들이 줄을 이었다.

◆외국인이 범죄피해 취약집단 = 외국인 노동자들이 일자리를 뺏어 간다는 논리는 과장된 측면이 강하다는 게 이주노동자 관련단체들의 주장이다. 경기침체로 한국인 일자리도 없는데 이주 노동자들이 너무 많이 들어오는 것 아니냐는 불안감이 겹치면서 사회적 약자인 외국인들이 일방적으로 매도당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이상재 한국이주노동자인권센터 팀장은 “제조업 분야는 외국인노동자가 아니면 현실적으로 일할 사람을 찾기 힘들다”면서 “외국인노동자들은 되레 최근 경기불황으로 일자리를 잃고 불법 체류자신세로 전락하고 있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식당 유흥업소 등 서비스업 분야에서의 중국동포들의 진출에 일반인들의 불만과 반감이 크다는 게 이 팀장 분석이다.

불법 체류 외국인들의 범죄가 늘어날 것이라는 우려도 지나치다는 평가다.
최형신 한국형사정책연구원 박사의 ‘외국의 불법체류와 외국인 범죄’라는 논문에 따르면 불법체류자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중국 방글라데시 태국 필리핀 인도네시아 네팔 국적 외국인의 경우 인구 10만명당 범죄자수는 적은 곳이 500여명, 많은 곳이 1800여명 수준으로 한국의 8800여명에 비해 현저히 낮다.
최 박사는 “불법체류 외국인들은 위험요소가 아니라 열악한 생활환경과 문화적 차이 때문에 내국인에게 범죄피해를 당할 수 있는 범죄피해 취약집단이라는 해석이 가능하다”고 지적했다. 때문에 감정에만 치우져 외국인들을 적대시하는 상황이 지속된다면 다문화가정 자녀를 포함한 외국인과 내국인 사이에 심각한 갈등사태는 언제든 벌어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고병수 기자 byng8@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