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인들 “외국인 노동자 차별 금지” 한목소리
손봉석기자 paulsohn@khan.co.kr

“이주민, 이주노동자들은 일상적인 인간사냥 단속으로 심각한 차별과 인권 침해에 신음하고 있습니다.”

‘세계이주민의 날’을 맞아 예술계 인사들이 이주노동자들의 권리와 노동권을 인정해야 한다는 성명서를 17일 발표했다.

도종환(시인), 박찬욱(영화감독)씨 등 문화, 예술인들은 이날 오전 서울 명동성당 옆 포탈라 레스토랑에서 민주화를 위한 교수협의회(민교협)의 박상환 의장이 낭독한 ‘차별 대신 차이를 존중하는 다문화 사회를 위하여 - 세계 이주 노동자의 날에 즈음한 문화.예술.지식인 선언’이라는 제목의 성명서를 통해 법무부가 최근 ‘불법’ 외국인을 단속하는 과정에서 이주민의 인권을 철저히 유린했다고 비판했다.

이날 기자회견에 첨석한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는 “일부 우익 세력들이 이주 노동자에 대한 반감을 체계화 하고 있다”고 우려를 나타냈다.


성명서는 또 지난 9월 정부가 발표한 ‘비전문 외국인력 정책개선방안’에 대해 “‘노예허가제’로 불려 온 고용허가제를 한층 개악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성명서는 특히 “이주 노동자 문제는 다문화 사회에 접어든 우리의 의식이 어디에 와 있는지 검증하는 리트머스 시험지”라며 “후진국 출신 노동자에 대한 편견을 버리고 폐쇄적인 순혈 민족주의 담론에서 벗어나자”고 호소했다.

이들은 ▲이주노동자에 대한 강압적 단속 중지 ▲이주노동자 고용허가제 개선 ▲중국국적 동포에 한해 재외동포법을 적용하지 않는 차별 시정 ▲사회통합교육 이수 의무화 내용을 담은 국적법 개악 방침 철회 ▲다문화 인권사회를 위한 종합적 청사진 마련 등 5개 요구사항을 제시했다.

이날 선언에는 구효서, 공지영(이상 소설가) 씨 등 문학인과 정지영(감독), 문소리(배우) 씨를 비롯한 영화인, 손호철(서강대), 오세철(연세대) 교수 등 학계 인사, 또 홍성담 씨와 박준 씨 등 미술 및 음악계 인사가 참여했다

<손봉석기자 paulsohn@khan.co.kr>

“일하고 싶어요…‘불법 사람’ 안되게 해주세요”
18일 세계이주민의 날
이주노동자·인권단체 기자회견 열려


  노현웅 기자 권오성 기자  

“회사에서는 일 없다고 나가라고 합니다. 두달 안에 다른 일자리 구하지 않으면 ‘불법 사람’(미등록 이주노동자)됩니다. 저도 며칠 있으면 ‘불법 사람’ 됩니다. 한국에서 일하는 똑같은 사람으로 대해 주세요”
2008 세계이주민의 날 문화·예술·지식인 선언




 세나디라(36·스리랑카)는 지난 7월 한국에 들어와 마늘 공장에서 일을 시작했다. 고된 일이었지만, 스리랑카에 있는 가족을 생각하며 하루하루를 이겨냈다. 그러나 경기 침체 탓에 일거리는 점점 줄어들어만 갔다. 결국 세나디라는 4개월 만에 해고를 당했고, 지금까지 5주 동안 일자리를 찾고 있다. 현행 고용허가제는 3차례로 재취업 기회를 제한하고 있고, 그 기간도 2개월을 넘을 수 없도록 정하고 있기 때문에, 세나디라는 앞으로 4주 동안 직장을 잡지 못하면 강제출국될 수밖에 없는 처지다.

 18일, ‘세계이주민의 날’을 맞아 외국인이주·노동운동협의회(외노협), 이주노조 등 이주노동자 인권·노동단체와 세나디라를 포함한 이주민들은 광화문 정부종합청사 정문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주민 탄압정책을 포기하고 경제 파탄의 어려움을 미등록이주노동자에게 전가하지 말라”고 주장했다. 이영 외노협 사무처장은 “출입국 관리법과 고용허가제 관련 법률 개정안을 보면, 이주노동자의 인권을 크게 제한시키고 있다”며 “출국만기보험 적용 범위에 체불임금 등을 제외하는 것이나 숙박비·숙식비 임의화 같은 법 개정 내용은 결국 업체의 부담을 이주노동자에게 전가시키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들은 이날 발표한 성명서에서 △이주민의 인권과 노동권을 보장할 것 △경제 파탄의 책임을 미등록 이주노동자에게 전가하지 말 것 △고용허가제 독소조항과 출입국관리법 철폐 △‘이주노동자 및 그 가족의 권리보호에 관한 조약’ 가입할 것 등을 주장했다.

 이들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서울 및 수도권 지역 이주노동자 337명을 대상으로 지난 11월16일부터 12월7일까지 진행한 ‘고용허가제 실태조사’ 결과도 발표했다.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이주노동자들은 하루 평균 10.96시간을 일하고 월 평균 109만원을 급여로 받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를 시급으로 나누어 보면, 최저임금 기준인 시간당 3770원에도 못미치는 수준이다. 주거형태는 회사가 비용을 부담하는 기숙사에 사는 경우가 52.5%에 달하고, 본인 부담은 20.4%에 그쳤다. 또 이들이 한국에 입국하기 위해 쓰는 비용은 평균 3519달러인 것으로 조사됐다.

 또 사업장 변경에 대한 설문에서는, ‘사업장을 옮기고 싶었던 적이 있었다’는 응답이 전체의 63.8%인 164명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 이유로는 ‘더 나은 작업 환경으로 옮기고 싶어서’(32.8%), 한국 동료들의 폭언·욕설 때문에(19.5%), 환경이 너무 열악해서(18.5%) 등 노동 조건의 열악함이 주된 이유인 것으로 나타났다. 실제 응답자의 65.7%는 ‘직장을 옮겨본 적이 있다’고 답했지만, 이 가운데 ‘직장을 옮기는 과정이 쉬웠다’고 응답한 비율은 9.7%에 불과했다. 이들은 직장을 옮기는 것이 어려웠던 이유에 대해 △사업주의 비협조(24.1%) △통역지원이 어려워서(17.7%) △새로운 일자리 정보부족 (15.8%) 등을 꼽아, 직업 선택에 있어 필수적인 기초 취업 정보와 접근권에 대해 불편함을 느끼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날 기자회견에 참석한 법무법인 ‘공감’ 소속 황필규 변호사는 “이주 노동자들에 대한 불법 소탕은 어느 나라에서도 찾아볼 수 없고 특히 직장과 길거리에서 사망과 부상을 당할 정도로 단속하는 나라는 한국 밖에 없다”며 “무리한 단속에 대해 업주들마저 소송 의사를 밝히고 있는 단속 정책을 우선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성공회 나눔의집 조직팀장으로 일하고 있는 자나카(38·스리랑카)는 “‘불법 사람’들은 일을 하고 싶어도 일을 할 수 없는 경우가 많다”며 “단속과 경제 위기 때문에 훨씬 많은 ‘불법 사람’들이 생길텐데, 이주민과 회사 모두가 힘들 것 같다”고 말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소속 정정훈 변호사는 “고용허가제라는 것은 외국인 노동자들을 연수생에서 ‘노동자’로 인정하겠다는 일종의 선언 같은 것”이라며 “노동자임에도 한 사업장에서만 근무를 해야 한다는 것은 노동의 자유를 인정하지 않는 것이며, 이런 상황에서 ‘이주노동자는 현대판 노예’라는 말은 은유가 아닌 현실”이라고 말했다.




노현웅 기자 goloke@hani.co.kr





문화·예술·지식인 289명 “이주노동자 인권 보장하라”


유엔이 정한 ‘세계 이주민의 날’을 맞아 문화·예술·지식인 289명이 이주 노동자의 인권보장을 촉구하는 성명을 17일 발표했다. 이번 성명에는 박찬욱(영화감독), 문소리(배우), 도종환(시인), 공지영(작가), 박노자(노르웨이 오슬로대 교수), 홍세화(한겨레신문 기획위원) 씨 등이 참여했다.

 이 가운데 민주화를 위한 교수협의회(민교협) 박상환 의장 등 10여명은 이날 오전 서울 명동성당 앞 포탈라 레스토랑에 모여 ‘차별 대산 차이를 존중하는 다문화 사회를 위하여’라는 제목의 선언문을 낭독했다. 선언문은 “이주 노동자가 우리 밥그릇을 빼앗는다는 선동에 가까운 목소리가 심심찮게 들려온다”며 “이주 노동자를 대하는 우리 사회의 태도를 근본적으로 되짚어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불법 이주 노동자 단속에 대해서도 “일반통행적인 법치만능주의가 ‘불법’ 이주 노동자들을 단속하고 추방하는 데 그치지 않고, 자칫 비정규직 노동자를 비롯한 우리 사회의 수많은 사회적 약자들마저 같은 방식으로 궁지에 몰아 넣을 수 있음을 우려한다”고 지적했다.

 문화·예술·지식인들은 이날 △이주노동자에 대한 강압적인 단속 중지 △노예제와 다름없는 이주 노동자 고용허가제 개선 △중국 국적 동포들을 배제하는 재외동포법 시정 △사회 통합교육 이수를 의무화하는 국적법 개악 철회 △다문화 인권 사회를 위한 청사진 마련 등을 요구사항으로 제시했다.

권오성 기자 sage5th@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