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11시간 노동-월급 109만원 차별에 ‘더 추운’ 이주 노동자

63% “회사 옮기고 싶어”

조성진기자 threemen@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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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고용허가제가 실시된 지 4년이 지났음에도, 국내에서 일하는 외국인 이주노동자들의 근무여건 개선은 더디게 진행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19일 외국인이주·노동운동협의회(외노협) 등이 서울 및 수도권 이주노동자 337명을 상대로 실시한 ‘고용허가제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이주노동자들은 하루 평균 10.9시간을 일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루 12시간 일한다는 응답자가 37.0%였고, 13시간 이상 일한다는 응답자도 11.8%에 달했다. 이들의 월평균 급여는 109만635원으로 조사됐다. 2006년 같은 조사에서 하루 평균 11.1시간을 근무하고 월평균 83만2737원을 받는 것으로 나타났던 것에 비춰보면, 이주노동자들의 근무여건 개선이 소폭에 그친 셈이다.

한국에 입국하는 데 드는 비용은 평균 3519.5달러로 조사됐다. 이는 2006년 조사 당시 한국 입국 비용(평균 1759달러)의 두 배 가까이 늘어난 것이다. 외노협은 “입국에 드는 공식 비용은 큰 변화가 없지만, 브로커에 지급하는 돈이 두 배 이상 오른 데다 한국어능력시험이 추가돼 입국 비용이 크게 증가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한국 입국 후 근로조건이 변경된 경우는 ▲임금 22.5% ▲근로시간 16.4% ▲업무내용 13.5%(복수응답 허용) 등으로 조사됐다. 회사를 옮기고 싶은 적이 있었다고 응답한 이주노동자는 63.8%로, 2006년의 69.5%에 비해선 약간 줄었지만 여전히 높게 나타났다.

조성진기자 threemen@munhwa.com


'불황·불법·불안' 3不 외국인 노동자 '눈물'
해고 0순위에 재취업 막막…"주변 눈길도 예전같지 않아"
문화학교 등 예산 삭감
인권 캠페인 중 항의도

  


"따뜻했던 그 눈길이 그립습니다…."

스리랑카 출신 국내 체류 노동자인 와사드(32·가명)씨는 '세계이주노동자의 날(18일)'을 스산한 심정으로 맞이했다. 와사드씨는 이날에도 혹시나 하며 부산고용지원센터를 찾았지만 허탕을 쳐야 했다. 한 달 사이 10여 차례나 센터를 방문했지만 소득은 전혀 없다. 내년까지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면 와사드씨는 불법체류자 신세가 되어야 하기 때문에 한국생활 1년 가운데 가장 초조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와사드씨는 지난해 12월 한국에 와 대구의 한 전자제품 부품공장에서 일했다. 반복되는 주·야간 노동으로 벌어들인 돈은 자신으로서는 큰 돈인 100여만원. '코리안 드림'까지는 아니었더라도 어느 정도 목돈을 쥘 수 있을 것이란 희망을 가졌다. 그러나 지난 10월 말. 경기불황의 여파로 그는 '해고 0순위자'가 됐고, 이내 실업자가 됐다.

이후로 외국인 노동자가 취업을 한다는 건 하늘의 별을 따는 일에 가까웠다. 일자리를 찾아 부산까지 왔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그를 더욱 옥죈 건 직장을 그만 둘 경우 2개월 안에 재취업을 해야 한다는 규정. '마감일'은 지금 눈앞에 다가와 있다.

와사드씨는 불법체류자라도 돼 보려 하지만 최근 들어 한국 사람들이 자신을 쳐다보는 시선이 부쩍 차가워졌고, 그게 못내 마음에 걸린다.

와사드씨의 경우처럼 외국인 노동자들이 경제난과 급증하는 사회적 냉대로 이중고를 겪고 있다.

기업들은 인건비 절감을 위해 이들을 우선적으로 감원하고 있고, 당연히 재취업은 어렵다. 인도네시아인 노동자들이 주로 찾는 부산외국인근로자선교회의 쉼터는 요즘 항상 붐비고 있다. 지난달 초부터 쉼터를 찾는 이가 급격히 늘어나 평균 10여명 내외였던 방문객 수가 30~40여명으로 크게 증가했다.

'외국인 노동자들이 우리 밥그릇을 앗아간다'는 식의 부정적 시선도 점차 확산되고 있다. 지난달 부산 서면에서 외국인 노동자들과 함께 거리 캠페인을 벌인 '외국인 노동자 인권을 위한 모임'에 따르면 캠페인 도중 일부 시민들이 "우리도 먹고 살기 힘드니 고국으로 돌아가라"는 식의 항의를 했다.

외국인 노동자 인권을 위한 모임의 이미란 실장은 "사회적 분위기가 확연히 달라진 게 거리 캠페인에서 느껴진다"며 "외국인 근로자들이 경제난에 이어 이중의 설움을 겪고 있다"고 말했다.

경남 김해시의회는 19일 내년도 '이주여성 문화학교' 관련 예산 3천만원 전액을 삭감, 논란이 일고 있다. '이주여성 문화학교'는 김해여성복지회관 내에서 120여명의 다문화가정 여성 120여명을 대상으로  한국어 교실과 국내문화체험을 실시하는 등 외국인 이주여성들의 조기 정착을 돕고 있다. 유사한 예산과 프로그램이 많다는 게 삭감 이유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김해시의회 하선영 의원(여·한나라당)은 "이주여성 문화학교는 4년 동안 순탄하게 운영돼 왔는데 이번 예산 삭감으로 인해 폐교위기에 처했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한편 불법 체류 외국인 노동자들 대부분이 '미란다 원칙'을 고지받지 못한 채 구금되는 등 정부의 단속 과정에 인권침해 소지가 있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국가인권위원회가 지난 7월부터 국내 외국인 보호시설 4곳의 외국인 노동자 510명을 설문조사해 18일 발표한 결과에 따르면 76%가 단속 과정에서 변호사의 도움을 받을 권리 등이 있다는 미란다 원칙 고지를 전달받지 못했다. 63%는 영문도 모른 채 연행됐고, 단속반원은 연행 근거가 될 수 있는 긴급보호서도 보여주지 않았다고 답했다.

김백상·백남경 기자 k103@busa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