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뮨주의와 일상 프로그램 제안서]


▒ 한솥밥과 우정의 식사



저희 연구실(‘연구공간 수유+너머’)에는 ‘우정의 식사’라는 말이 있습니다.

밥을 함께 해 먹으면서 생겨난 말이지요.

밥을 먹는데 웬 우정? 함께 밥 먹으면서 관계를 돈독하게 하자는 이야기인가?

물론입니다. 하지만 말을 조금 바꿔야겠네요.

관계를 돈독히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어떤 음식을 내놓아도 함께 싹 비우고 있는 순간이 바로 관계 그 자체니까요.

여러 사람이 밥을 짓고 하루에 두 끼를 짓다 보니 이따금 ‘먹을 수 없는’ 음식들이 밥상에 오르곤 합니다.

전기밥솥으로 지은 삼층밥이라던가, 아무리 먹어도 바닥이 보이지 않는 타붙은 카레 한 솥이라던가.

이런 음식들을 남기지 않고 싹 비우는 것을 저희는 우정의 식사라고 부릅니다.

일류 요리사가 만든 훌륭한 음식을 한 순간에 쓰레기로 만들기는 쉽지만,

친구가 만든 허접한(!) 음식은 온갖 말로 궁시렁대는 한이 있어도 먹어 줘야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 오늘 또 우정의 식사해야 하는 거냐?”라는 농담을 양념으로 얹으면,

솜씨 없는 요리사, 맛없는 음식, 밥 먹는 사람 모두 함께 ‘코뮨의 밥상’을 차리게 됩니다.

‘한솥밥’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함께 밥을 지어 먹는다는 건 삶에서 가장 일상적인 부분을 공유한다는 뜻이고,

서로의 존재 없이는 지금의 나는 없다는 뜻이겠죠.

특별히 무슨 이야기를 나누지 않아도, 관계가 늘 좋지만은 않아도,

그 친숙함과 더불어 온갖 미운정 고운정이 싹트는 곳,

함께 살아가는 삶을 꾸려가는 곳이 바로 일상의 영역입니다.





▒ 코뮨적인 삶과 코뮨들의 연대


하지만  일상은 일상에만 머무르지는 않습니다.

다른 사람들로부터, 그리고 자신의 일과 삶으로부터의 소외를 강요하는 신자유주의 사회에서는

“코뮨의 생산”이야말로 가장 중요한 저항적 삶의 방식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중산층 가정의 광택 있는 삶을 영위하기 위해 주부는 하루 대부분의 시간을 육아와 가사노동에 투자해야 하고,

가장은 일터에서 즐겁지 않은 일을 하며 보내야 합니다.

생활이 빈곤하다면 개개인이 생존하기 위해 필요한 벌이 자체도 쉽지 않습니다.

잃을 것만 있는 사람들 사이에 경쟁만이 놓여 있지요.

함께 있지만 함께 있다고 말할 수 없는 곳, 모두가 소외된 삶을 살아가는 곳,

그러한 곳은 ‘코뮨’이 없는 곳이 아닐까요.


사회 내지는 삶의 기초 단위는 ‘개인’ 혹은 ‘가족’이라는 말에 반대하여,

우리는 ‘코뮨’이야말로 삶의 기초 단위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공동체, 마을, 코뮨... 어떤 표현을 사용하든,

더불어 살아가는 삶의 기술들을 고안해 내는 것이 우리 시대 삶의 중요한 화두 중 하나인 것 같습니다.

정치가 상이한 삶의 기술들의 각축장인 한

일상을 꾸려 가는 기술 역시 중요한 정치 사안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우리는 서로가 더불어 해방될 수 있는 자유로운 삶을 ‘코뮨’을 화두로 꿈꾸어 보자고 제안합니다.

개개인의 이해관계에 따른 이합집산이 아닌, 자유의 확장을 위해 함께 만들어 가는 관계.

자유란 남들에 의해 간섭받지 않을 권리가 아니라

서로가 서로에게 적극적으로 간섭하며 삶과 활동의 반경을 넓혀 가는 운동을 일컫는 말은 아닐까요?

함께 살아간다면 혼자서는 할 수 없는 일도 할 수 있게 되고,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조차 많아집니다.


저희는 연구공간 수유+너머의 2007년 가을 학술제 프로그램으로

‘코뮨주의와 일상’의 날을 11월 1일 목요일에 마련했습니다.

저희 연구실과 수유리의 아름다운 마을 공동체, 그리고 문턱없는 밥집이 함께 준비하고 있습니다.

이 날 마을을 일구고 싶어 하시는 분들과 함께 모여 밥도 해먹고 제기차기도 하고

각자의 마을에서 살아가는 이야기들을 어울려 듣는 시간을 마련해 보았으면 합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과정에서 함께 풀어 나가야만 할 아주 구체적인 문제들에 대한 지혜를 모아,

내가 살아가고 있는 그 곳에서 마을을 일궈 갈 수 있는 아이디어들을 나눠 보았으면 합니다.

육아와 공부, 밥짓기와 놀이. 마을 안에서라면 이들 중 어떤 활동도 공적인 것, 사적인 것이 없습니다.

단지 살아가며 만들어야 할 공동의 프로젝트만이 있을 뿐입니다.

공과 사의 구분, 그 어느 구분에도 속하지 않는 코뮨의 영역.

소외를 넘어선 삶의 영역.

그 영역을 일궈 가기 위한 기술들을 코뮨들의 코뮨을 통해 함께 나눠 보면 어떨까요? ^^





▒ 간담회 내용



1. 코뮨과 공부


첫 번째로 저희가 고른 주제는 ‘코뮨과 공부’입니다.

저희 연구실은 연구자들의 모임이지만, 공부가 직업적인 학문활동으로 제한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아무리 대단한 지식이라도 삶과 무관하다면 죽은 지식에 불과한 게 아닐까요.

반대로, ‘산 지식’이라는 말은 지식이 돈이 된다거나 실용적이라는 것을 뜻하지는 않습니다.

그것은 내가 어떤 삶을 살아가기를 원하는가라는 질문 속에서

공부가 내 앞길에 놓인 이정표들과, 길을 가기 위한 지혜를 밝혀 주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공부는 삶을 궁리하는 과정이며,

그 궁리의 과정을 몸으로, 기분으로, 습관으로 몸에 익혀 가는 과정이라고 저희는 생각합니다.



삶이 더불어 살아가는 것을 의미하는 한 공부란 함께 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저희는 ‘코뮨주의와 일상’의 날에 ‘함께 하는 공부’란 어떤 것인지의 문제를 짚어 보고자 합니다.

고군분투 내지는 경쟁을 위한 공부가 아니라, 더불어 살기 위한 공부는 어떤 것일까요?

또 반대로 공부를 통해서 어떻게 함께 살아가는 삶을 만들 수 있을까요?

공부는 어떤 소통의 과정이 되어야 할까요?



2.  코뮨과 가족


두 번째 주제는 ‘코뮨과 가족’입니다.

‘공과 사’의 이분법적 대립은 가족의 영역을 ‘사적’인 것이라고 보게 만드는 경향이 있습니다.

‘노동력 재생산’을 위해 하루의 피로를 풀고 사회의 구성원을 재생산하는 일들이 이뤄지는 곳, 가족.

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의 엄정한 분할은 가족을 그런 역할을 수행하는 유일하고 배타적인 공간으로 만듭니다.

‘재생산 노동’을 수행하는 사람들이나 ‘생산 노동’을 수행하는 사람들이나 한결같이 삶의 소외를 경험하며,

그런 일들을 수행할 능력이 없는 ‘가족’은 사회로부터도 소외됩니다.

모든 공동체들은 그러한 문제들을 사적인 방식이 아니라 집합적인 방식으로 풀어보고자 하는 시도가 아닐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동체 내에서 가족은 끊임없이 발생하고, 그에 따라 생겨나는 문제들이 생겨납니다.

이를테면 공동체 성원들이 결혼을 하고 가족을 구성하게 되었을 때,

가족은 공동체 바깥에 놓이게 되는 경향이 있는 듯합니다.

공동체 내부에도 새로운 방식으로 공사분할이 발생한다고 할까요.

육아와 출산의 문제, 생활의 기초를 ‘사적’으로 해결하게끔 하는 돈 문제,

공동체와 구성원들 사이에 대립적인 관계를 만들곤 하는 친밀성의 문제.

이들 문제와 관련해서 공동체들이 가족들과 어떻게 상호작용하고 있는지,

거기서 발생하는 문제들을 어떻게 풀어가고 있는지,

코뮨적인 가족이란 무엇인지, 함께 이야기해보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