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해 위험 없다? 버마행동 회원들 난민 인정 불허
법무부 "충분한 조사 거쳤다"... 버마행동 "다양한 활동 증거 있어"

    최봉실 (grasslight)  





반정부 활동 부족...법무부, 버마행동 회원 난민 인정 '불허'




9월 26일 버마 샤프론 혁명 1주년을 앞두고 버마(미얀마)에 긴장이 고조되고 있는 가운데 한국에서 활동중인 '버마행동 한국'(이하 버마행동) 소속 회원들의 난민인정 신청이 불허당했다.



지난 9월 4일 법무부는 버마행동 소속 회원 8인에 대해 '난민인정불허'를 결정했다. 첨부된 불허사유서에는 "주목할 만한 반정부 활동가로 적극적인 활동을 한 것이 아니다" "하위 수준 활동가 또는 단순 지원자"이며 따라서 "귀국 시 박해받을 가능성이 높지 않다"고 밝히고 있다. 즉, '난민협약의 적용을 받는 자'에 해당되지 않는다는 것.




  
  
▲ 주한미얀마대사관 앞 집회 2005.5. 주한미얀마대사관 앞 집회에 참석한 <버마행동한국> 회원들  
ⓒ 버마행동  버마행동




"어떤 활동했는지 제대로 알아봤다면 불허할 수 없을 것"



이로써 버마행동 총무인 소모뚜(34)씨 외 7인은 2004년에 난민 신청을 한 후 그로부터 4년 뒤 불허 통보를 받았다. 버마행동 측의 입장을 들어보기 위해 얼마 전 부천역 앞으로 이사한 버마행동 사무실을 찾았다. 버마행동 측은 이번 결정을 납득하기 어려워했다.



"난민인정 신청을 한 2004년부터 2008년까지 우리가 어떤 활동을 하며 지냈는지 제대로 알아봤다면 반정부 활동이 부족하다고 할 수가 없어요."



'박해 받을 가능성이 높지 않다'고 한 것에 대해서는 우려스럽다는 반응을 보였다.



"아니 지금 버마 상황이 어떤 상황인데 박해받을 수 있는 가능성이 높지 않다니요? 법무부가 난민 인정을 불허하지만, 버마의 불안정한 정치 상황이 지속되고 있는 점을 고려해 상황이 호전될 때까지 인도적 견지에서 체류를 허가한다고 했어요. 불안정한 정치 상황에서 보호해 준다는 게 박해의 위험을 인정하는 거 아닌가요? 그러면서 난민인정은 안 된다니 이해할 수 없는 거죠."



인도적 체류 허가는 언제든지 돌발적으로 강제 퇴거를 당할 수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정당한 '난민 지위'에서 버마 민주화 운동을 하길 원한다고 버마행동 측은 강조했다.



버마행동의 뚜라(37) 대표는 현재 버마 노동자들 중에 친군부 성향의 노동자들이 한국에 많이 들어와 있어 감시 역할을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감시자들을 다 심어 놓았어요. 우리가 뭘 하는지 그대로 보고가 들어가는 거예요. 우리의 활동이 다 노출되고 감시받고 있는 상황입니다. 이럴 경우 버마로 돌아갔을 때 닥칠 위험이 더 크다는 걸 알 수 있어요."



법무부는 불허 사유서에 '버마행동'이 "주한미얀마대사관이 여권 재발급 및 갱신 시 부과하는 수수료를 경감시키기 위해 만들어진 조직으로 본국의 반정부 단체나 NLD(버마 야당)와 관련이 없다"고 밝혔다. 하지만 버마행동 측은 "먹고 사는 문제도 중요했지만 버마 민주화를 위해 힘을 모으는 게 필요했다"며 단체를 만든 이유를 설명했다.



"버마행동이라는 단체를 만들기 전부터 오랫동안 한국에서 버마공동체 활동을 하면서 이주노동자들의 인권 문제와 버마군부독재의 탄압을 비판하고 민주화를 위해 활동을 했다"며 사실 버마행동을 만든 것은 이러한 활동을 "보다 적극적으로" 하기 위해서였다는 것이 버마행동 측의 주장이다.



"우리가 2004년 초에 버마 행동을 만들고 버마대사관 앞에서 시위를 많이 했어요. 그런데 대사관이 버마 군정에게 과하게 보고를 한 거죠. 대우가 버마에 건설한 송유관을 우리가 폭파할 거라고 전한 거예요. 그러니 우리에 대한 탄압을 강화한 거죠. 그래서 불안을 느끼고 바로 난민신청을 하게 된 겁니다."



"위험 커 많은 사람이 정회원으로 활동할 필요 없어"



소모뚜 총무의 설명이다. 작년 9월 전 세계를 경악시킨 샤프론 혁명. 샤프론이란 스님들이 입은 옷의 빛깔을 뜻하는 말로, 스님들이 주도한 시위라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당시 버마행동은 한국 내 다른 민주화 단체들과 연대해 '프리버마 캠페인'을 펼치며 시위대를 향한 군부의 만행을 알리는 데 앞장섰다.  



프리버마 캠페인은 2007년부터 지금까지 매주 화요일 종각 버마대사관 앞에서 버마 민주화를 위한 선전 활동과 버마 군부의 탄압을 알리는 활동을 펼치고 있다. 이외에도 ▲버마대사관 자국민 착취 폭로 기자회견, ▲자국민 착취 미얀마 정부 규탄 집회, ▲사형 선고 받은 변호사, 학생, 언론인들의 석방요구 캠페인, ▲버마 8888민중 항쟁 기념 집회, ▲버마 난민들과 반정부 단체 지원 계획 연대 회의 등 해외 버마 활동가들과의 연대, ▲버마 민주화와 현재 상황 알리는 캠페인, ▲버마 군사정부 규탄과 아웅산 수지 여사 정치범 석방 요구 시위 등 다양한 활동을 했다.



현재 버마행동 정회원은 14명. 뚜라 대표는 정회원을 소수만 두고 있는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이름을 드러내고 활동하는 것이니 위험이 크죠. 그러니 많은 사람들이 정회원으로 활동할 필요는 없어요. 핵심적으로 일할 사람들만 정회원으로 하고 있는 것이죠. 정회원이 많고 그 중에 핵심적인 활동가들이 있는 것과는 좀 다른 구조인 거죠. 이들 소수 정회원은 매월 12만원씩 회비를 내며 활동합니다."



이번에 불허 판정을 받은 버마행동 회원은 바로 이들 정회원이다. 그리고 모두 핵심적인 역할을 맡고 있는 총무, 부총무, 부사무국장, 노동국장, 조직부장, 부홍보부장, 재무부장 등. 하지만 이들에 대해 법무부는 "하위 수준 활동가 또는 단순 지원자에 불과하므로 귀국 시 박해받을 가능성이 높지 않다"고 불허 사유를 밝힌 것.



버마행동 측은 한국의 버마 이주 노동자들은 버마민주화를 위해 일하고 싶어도 선뜻 드러내 놓고 활동하는 것을 두려워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작년 9월 샤프론 혁명 이후 군부의 잔악함을 다시 한 번 목격한 후 힘을 모으기 위해 버마행동 회원이 되려는 이들이 많아지고 있다는 것. "이들을 보호해 줘야 하지 않겠느냐"며 강하게 호소하는 소모뚜 총무. 그는 이번 법무부 결정이 민주화 운동 대열에 동참하는 그들을 보호해 줄 수 없게 만드는 거라며 우려를 표했다.



법무부 "면담과 전화통화 등 충분한 조사 거쳤다"



  
  
▲ 버마국민운동촉진위원회 회의 2006년 4월 <버마행동한국> 대표들이 '버마국민운동촉진위원회' 회의에 참석 중이다.  
ⓒ 버마행동  버마




버마행동 회원들에 대한 조사가 어떻게 이뤄졌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난민실과 법무부와 통화했다. 난민 담당 김재남 계장은 이들 8인에 대한 조사가 얼마나 이뤄졌느냐는 질문에 대해 "면담과 전화 통화, 민관난민인정협의회 등을 통해 조사는 충분히 이뤄졌다"고 주장했다. 더구나 다른 버마행동 회원의 난민 인정을 불허한 법무부의 결정에 대해 지난 7월 24일 최종 이뤄진 대법원 판결에서 법무부가 승소했다며 다음과 같이 강조했다.  



"면담은 1회씩 진행된 것이지만, 2005년에 난민인정 신청을 했던 버마행동의 다른 한 회원에 대해 재판이 진행되고 있었기 때문에 버마행동에 대해서는 충분한 조사가 이뤄진 것이죠."



김재남 계장이 확인해준 바에 따르면, 이들 8인에 대한 난민인정 불허 결정 과정에서 이뤄진 면담은 7인의 경우에는 2005년에서 2006년 사이에 각각 1회씩, 나머지 1인은 2006년 11월에 3회에 걸쳐 이뤄졌다.



불허 결정이 난 버마행동 회원 8인은 16일까지 모두 이의신청을 마쳤다. 이의신청서에는 이들이 한국 내에서 지난 5년간 전개한 버마민주화 활동과 관련 사진, 영상 자료들이 함께 첨부되었다. 특별히 그들이 난민 인정을 받지 못하고 본국으로 송환될 경우 버마 법에 의해 불법으로 처벌받을 수 있는 죄목들은 '▲불법 단체를 만든 범죄, ▲불법 잡지 출판 및 배포한 범죄, ▲불법 음반, 노래, 작곡 제작한 범죄, ▲국민회의를 반대한 범죄, ▲국가안전 보안법 위반' 등 7가지라고 이 이의신청서는 밝히고 있다.



김재남 난민담당 계장은 "오랫동안 불법체류 노동자로 있으면서 그런 상황을 더 유지하려고 난민 신청을 하는 경우가 있으며, 단순히 시위 사진 등만으로 박해 위험이 있다고 할 수 없다"며 "지난 7월 24일 대법원 판결에서 버마행동 회원이 난민 인정 불허로 판정된 사례가 이번 우리의 결정이 정당한 것이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대답했다.



현재 버마 민주화 활동가로 알려져 있는 <함께하는 시민행동> 인턴 마웅저씨와 NLD(아웅산 수지가 이끄는 야당인 민주주의민족동맹당, National League of Democracy) 한국지부의 조모아 부총무 외 7명은 2000년 난민 인정 신청 후 6년 만인 2005년에 모두 '불허' 결정을 받고 5일 안에 떠날 것을 요구받았다. 이들은 이후 1, 2심의 소송에서 중요한 사항과 관련해 승소했으나 다시 법무부가 항소해 지금까지 대법원에 계류중이다. 이달 25일 이들에 대한 대법원 최종 판결이 나올 예정이다.




<난민협약>에서 '난민'의 정의
1951년에 채택되고 1992년 한국 정부가 가입한 <난민의 지위에 관한 협약>(이햐, 난민협약) 제1장 제1조에서 규정하고 있는 난민의 정의는 다음과 같다.



"인종, 종교, 국적, 특정 사회집단의 구성원 신분 또는 정치적 견해를 이유로 박해를 받을 우려가 있다는 충분한 근거가 있는 공포 때문에 국적국 밖에 있으면서 국적국의 보호를 받을 수 없거나 스스로 받지 않는 자 및 이들 사건의 결과로서 상주국가 밖에 있는 무국적자로서 종전의 상주국가로 돌아갈 수 없거나 또는 그러한 공포로 인하여 종전의 상주국가로 돌아가는 것을 원하지 아니하는 자"



즉, 박해를 받을 수 있는 조건에는 ‘현재의 이유’만이 문제되고 있다. <협약상 난민의 요건과 출입국관리법 상 난민인정에 관한 고찰>이라는 2003년 논문에서 당시 대전지방법원 논산지원의 김성수 판사(현 서울고등법원 판사)는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난민의 요건이 되는 박해의 가능성은 반드시 국적국에서 출국할 당시에 존재하여야 하는 것은 아니다. 일단 박해의 가능성이 없는 상태에서 출국한 경우라 하더라도 출국 이후의 사정으로 박해에 대한 염려 때문에 귀국할 수 없거나 귀국을 거부하는 경우에는 협약에 따른 난민으로서 보호를 받을 수 있다."(난민의 지위에 관한 1951년 협약과 1967년 의정서에 의한 난민지위 인정기준 및 절차편람 94내지 96항)



즉, 현지 난민을 발생시키는 원인이 출국 후 국적국의 사정변경에 의한 경우도 있고, 반정부단체 가담등 신청인이 국외체재 중에 한 행동이 박해의 원인이 되는 경우도 있다는 것. 따라서 ‘이전에는 반정부 활동을 안 하다가 반정부 활동을 하게 된 경우’가 ‘난민의 조건’에 문제가 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