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 노동자는 없다 / 정정훈
  

  

“아자! 방글라 놈 열여덟 마리 추방시켰다∼.” ‘불법 체류자’ 추방 운동을 벌이고 있는 한 인터넷 카페의 자유게시판에 ‘좋은 소식’으로 공지된 글 중의 한 구절이다. ‘불법 체류자 박멸’을 주장하는 이들의 인식과 활동이 위험수위를 넘어섰다. 이들은 ‘불체자’ 신고 게시판을 운영하면서, 신고 처리 결과를 공유하거나 단속 현장에 직접 나가서 상황을 보고하기도 한다.
몇몇 언론에서 보도된 바 있지만, 이들의 ‘표현’과 활동에서 드러나는 노골적인 증오는 가볍게 보아 넘길 수준이 아니다. 고용 불안과 같은 사회적 좌절이 일부 계층에 대한 증오감정으로 공격적으로 표출되고 있다는 점에서 전형적인 인종주의와 제노포비(외국인 혐오)가 가시화하고 있는 것이다.

이들은 ‘불법 체류자를 추방하여 국내 노동자를 보호’하는 것을 명분으로 내세우고, 범죄 등 외국인 문제를 시민들에게 알리는 활동을 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런 주장은 편견과 혐오를 정당화하는 알리바이에 불과하며, 잘못된 진단과 처방을 따르는 것이다.

우선 이런 주장은 이민과 이주노동은 우리 사회 문제의 ‘원인’이 아니라 ‘결과’라는 점을 간과하고 있다. 농촌 붕괴, 사회적 육아 체계의 부재로 인한 출산율 저하, 대기업 위주의 기형적 산업 발전, 노동시장의 양극화라는 우리 사회의 구조적 원인과 전지구적 불평등이라는 요인이 결합돼서 현재의 이민과 이주노동 현상이 결과적으로 나타난 것이다.

그리고 ‘그들이 우리의 일자리를 빼앗고 있다’는 일방적인 전제 또한 문제다. 이주노동자와 내국인 노동자의 일자리가 충돌하고 있는지 여부는 논쟁적일 수 있다. 그러나 많은 보고서들은 일자리가 단순히 노동자의 수에 의해서만 결정되는 것이 아니고, 이주노동으로 인한 산업의 발전이 오히려 일자리를 만드는 데 기여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또한 현행 고용허가제는 고용 충돌을 방지하기 위한 여러 장치를 마련하고 있다. 내국인 기피 업종(3D)에서 인력 공백을 보충하도록 설계되어 있는 현재의 제도에서 이주노동자들이 ‘국민’의 일자리를 침해한다는 전제는 받아들이기 어렵다. 오히려 그러한 단정적 전제는 신자유주의 시대 불안전 고용의 사회적 갈등을 ‘내부의 적’을 만들어 우회하려는 인종주의적 동원에 가깝다.

물론 건설현장이나 미등록 이주노동자를 고용하는 경우, 고용 충돌이 발생할 개연성이 높은 것 또한 사실이다. 그러나 갈등의 근본적인 책임은 이주노동자들이나 내국인 노동자 당사자들에게 있지 않다. 문제는 갈등의 표출을 왜곡하는 제도 자체에 있다. 사업주들에 의해서 노동자들 사이의 ‘바닥을 향한 저임금 경쟁’이 활용되고 있다면, 어떻게 이를 제도적으로 막을 것인지에 주목하여야 한다.

그래서 우리의 관점은 ‘불법 체류자 박멸’이 아니라, ‘불법 노동자는 없다!’는 원칙의 확인이어야 한다. 사업장에서 미등록 이주노동자에 대한 착취가 강화되면, 결국 내국인 노동자들과의 불공정 경쟁을 증가시킬 것이라는 점에 대한 노동조합의 인식이 필요하다. 임금 하락과 노동조건의 악화를 막을 유일한 방법은 (미등록) 이주노동자의 조직화와 노동자로서의 권리를 보호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

우리는 “빈곤과 싸울 능력이 없기 때문에 가난한 사람들과 싸운다.” 그렇게 ‘불안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난 분노가 희생양을 만들어 내고 있다. 사회적 불안을 이방인들을 향해 공격적으로 처리하는 왜곡된 인식이 더는 자라나서는 안 된다. 이제 민주노총과 같은 조직 노동자들이 이 문제에 적극적으로 대응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