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법과 불법사이, 외국인 노동자] 한국말밖에 모르는 2세들 추방되면 그곳서도 '이방인'
<3> 불법체류 8년째
"한국에서 평생 아이들 키우며 살고 싶어요"
정부, '일시 귀국' 프로그램 세웠다 없던 일로

"전 세계에서 어떤 나라도 단속으로 불법체류자를 몰아내는 데 성공한 나라는 없습니다."(김해성 목사, 구로 외국인노동자의 집)

외국인 노동자 관련 인권운동가들은 법무부의 단속 정책에 대해 극단적인 냉소(冷笑)를 보내고 있다. 법무부 통계만 봐도 알 수 있다는 것이 그들의 말이다.

1990년대 중반 이후 법무부는 줄곧 불법체류 외국인 노동자를 단속해 왔다. 매년 평균 2000~3000명씩 추방했다. 하지만, 20년 전(1988년) 5007명이던 불법체류자 수는 10년 뒤(1998년) 9만9000명으로, 2008년 현재는 23만명으로 무려 46배가 늘었다.

단속돼 추방되는 불법체류자보다, 입국 후 불법체류자가 되는 수가 훨씬 많기 때문이다. 법무부는 "단속을 하지 않으면 더 빨리 늘어나기 때문에 단속한다"고 밝히고 있다. 정부 역시 별 뾰족한 방법이 없는 것이다. 그 사이 한국 사회에 완전히 정착한 불법체류자까지 생겨나기 시작했다.


▲ 방글라데시에서 8년 전 산업연수생으로 입국해 불법체류자로 사는 눌람미아 가족이 컨 테이너 박스 집 앞에 섰다. 큰 딸과 아들은 한국에서 태어나 방글라데시에는 한 번도 가 보지 못했다. 이석우 기자
◆여기가 내 나라인데

눌람미아(38·방글라데시)는 경남 함안의 시골 공장 뒷마당에 있는 컨테이너 박스에서 산다. 한 컨테이너에는 장롱, 옷장, 텔레비전이 놓여 있다. 다른 컨테이너는 주방 겸 식당이다. 이곳에 관광 비자로 데려 온 아내 함메트(29)와 산다. 2001년 산업연수생으로 들어 와 한국생활 8년째가 됐다.

부부는 맞벌이로 한 달에 210만원 정도 번다. 부유하지는 않지만 먹고 사는 데는 지장이 없다. 여기서 낳은 두 자녀는 피부색만 검을 뿐 방글라데시는 한 번도 가 보지 못한 한국 사람이다. 한국말은 해도 방글라데시 말은 전혀 못한다. 아내 함메트는 아이들을 한국에서 교육시키고 싶어한다.

"방글라데시로 추방되면, 딸 아이는 생전 처음 보는 히잡을 쓰고 살아야 합니다. 이슬람 국가라서 남자 아이들과는 절대 어울려 놀 수도 없어요. 아이들 교육 때문에라도 돌아 갈 수 없어요. 추방되지만 않으면 평생 한국에서 아이들 공부도 시키고, 일하면서 살고 싶어요."

눌람미아 가족은 이제 한국을 단순히 돈을 버는 곳이 아니라, 평생 뿌리를 내리고 사는 삶의 터전으로 여기고 있다.

◆10년 이상 불법체류자만 2만1966명

지난 4월 기준으로 한국에는 10년 이상 불법체류자로 살고 있는 사람이 2만1966명이 있다. 전체 불법체류자의 9.5%에 이른다. 5년 이상 불법체류자로 살고 있는 사람은 4만7300명, 불법체류자의 20%에 이른다.

한성대 경영학과 박영범 교수는 "외국인이 5년간 한국에 살면 한국의 언어, 문화, 음식, 인간관계 등에 적응하기 시작한 '정주화(定住化)' 단계에 들어간다"며 "이들은 외국인력 정책이 아니라 국가 인구 구조가 변화하는 '이민정책'의 대상이 된다"고 말했다.

그러나 우리 정부는 외국인 노동자를 이민정책의 대상으로 삼은 적이 한번도 없다. 인력 시장의 한 부분일 뿐이다.

불법체류자가 점점 늘어나는 사이 그들도 한국에서 결혼을 하고, 태어난 자녀들도 학교에 들어가야 하는 시기가 됐다. 법무부 추산에 따르면 1~13살까지 동남아시아 부부의 아이들이 1893명이다. 2001년부터는 불법체류자의 자녀도 초등학교에 입학할 수 있고, 2003년부터는 학교장 재량에 따라 중·고등학교에 입학할 수도 있다. 학교 입학은 허용되지만 합법체류 자격을 주지는 않는다.

◆'일시 귀국 프로그램' 도입 직전 폐기

정부가 '단속' 외에 다른 정책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지난해 말 법무부와 외국인 노동자 인권 단체 사이에 긴밀한 협의가 이루어져 불법체류자에 대한 획기적인 정책이 '나올 뻔' 했다.

불법체류자 23만명에 대해 다시 한국으로 입국해 2~3년간 일할 수 있도록 우리 정부가 보장해 주고, 단계적으로 일단 귀국을 시키는 '일시 귀국 프로그램'을 도입하는 것이었다.

고국으로 돌아간 불법체류자가 대부분 한국으로 재입국하겠지만, 최소 10~15%는 "그냥 고향에 살고 싶어서", "본국에서 한국 재입국을 허가 해 주지 않아서" 등의 이유로 돌아 오지 않게 된다. 자연스럽게 불법체류자 수를 줄이는 효과가 있다. 지난 2003년 중국 동포에 대해 '일시 귀국 프로그램'을 적용해 이 같은 효과를 거두었다.

이 정책의 기본은 불법체류자의 존재를 인정하는 대신 증가 속도를 늦춰보자는 것이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가 들어 선 올해 초, 법무부가 갑자기 '없던 일'로 돌려 버렸다.

법무부 관계자는 "지난 정부 말기에 일시 귀국 프로그램을 검토한 것은 맞지만, 합법체류 중인 외국인 근로자와 형평성 문제가 생길 수 있어 중단했다"고 말했다. 현 정부의 정책 기조인 '법과 원칙'에 위배된다는 것이다. 대신 법무부는 오히려 5월부터 단속을 강화했다.

이 일로 법무부와 인권단체 간은 감정의 골이 깊어져 버렸다. 현재 우리 정부의 불법체류자 대책은 오로지 '단속' 말고는 다른 정책은 없는 상황이 지속되고 있다. 외국인이주·노동운동협의회 이영 신부는 "우리 정부가 계속 단속에만 의존하면 결과적으로 불법체류자 수는 증가할 수밖에 없다"며 "정부도 시민단체, 학계의 얘기에 귀를 기울이고 해결책을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웃통 벗고… 타인 신경 안쓰고 쇠창살 있는 임시 '출국 수속장'
합법과 불법사이, 외국인 노동자
<4> 화성외국인보호소 르포  

경기도 화성시 마도면 석교리 벌판에 자리잡은 화성외국인보호소. 지난 6월 25일 오후 6시 저녁 식사 시간이 되자 이곳 보호소 전체가 김치, 된장찌개 냄새로 가득 찼다. 이어 추방을 앞둔 외국인들이 그동안 익숙해진 듯 능숙하게 한국음식을 먹었다.

보호소 내 수감실은 54곳. 강제 추방을 앞둔 불법체류자 450여명이 수감돼 있었다. 수감실 전면에는 엄지 손가락 굵기의 쇠창살이 쳐져 있고, 각 방의 천장 모퉁이와 복도 곳곳에는 CCTV 카메라 90여개가 설치돼 있었다. 이를 통해 이들의 행동이 24시간 감시된다. 수감실 복도 끝에는 회색 정복을 차려 입은 보호소 직원이 지키고 있었다.

삼엄한 쇠창살 밖 분위기와 달리 수감실 안은 평화로워 보였다. 나무 의자에 퍼져 앉아 있거나 마룻바닥에 벌렁 드러누운 사람이 대부분이었다. 일부는 웃통을 훌렁 벗고 있었다. 보호소 직원이 지나가면 "TV 잘 안 나와요"라고 소리를 지르기도 했다. 보통 1주일, 길어야 보름이면 출국하는데 눈치 보고 살 필요는 없다는 투다.

◆'잡히는 날이 귀국하는 날'

이들 모두 수갑을 차고 보호소로 들어 왔지만, 스스로 '범죄자'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다. 그들에게 보호소는 쇠창살이 있는 '출국 수속시설'일 뿐이다.

보호소 안에서 슬리퍼를 끌고 다니던 난달 뿌따르(44·방글라데시)씨는 연방 싱글벙글이었다. 그는 1997년 6월 한국에 들어 와 11년간 불법체류자로 살며 8000만원을 벌었다. 벌 만큼 벌었고, 비록 강제출국이지만 고향으로 돌아가게 된 그는 행복한 듯했다. 그는 "한국은 정말 좋은 나라"라고 말했다.

그는 경기도 부천시의 자루를 만드는 공장에서 일했다. 한국에서 번 돈으로 고향에 있는 가족 8명을 먹여 살렸다. 여동생 2명의 결혼 지참금 2000만원도 마련해 줬다. 그래도 3000만원이 남았다.

뿌따르씨는 "사장님 저한테 정말 잘해 줬는데, 특별인사(작별인사) 못하고 가서 너무 아쉽다"고 했다. 그는 "오늘이 한국에서 마지막 밤인데 정말 잠이 안 올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다음날 비행기를 타는 순간 11년간의 도망자 생활을 청산한다.

장기 불법체류자들에게는 '잡히는 날이 귀국하는 날'이다. 화성보호소 박기주 과장은 "돈을 많이 번 여성들 중에는 보호소에서 나가는 날 온갖 장신구로 한껏 멋을 내는 사람도 있다"며 "적어도 고국에서는 외국에서 엄청나게 성공한 사람들"이라고 말했다.

반면, 돈을 생각처럼 벌지 못한 불법체류자들은 아쉬워했다. 파키스탄에서 왔다는 마흐마드 다해르(32)씨는 4년 6개월 만에 붙잡혔다. 4000만원 정도 벌었다. 그는 "부모님들이 (내가) 잡혔다는 소식을 듣고 많이 가슴 아파한다"며 "고향에 돌아가서 몇 개월 쉬다가 다른 나라로 돈 벌러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 한국에서 불법체류자로 살다 화성외국인보호소로 잡혀 온 난달 뿌따르(왼쪽·방글라데시)씨와 마흐마드 다해르(파키스탄)씨가 손을 흔들며 수감소로 들어가고 있다. 이들은 도망자 생활을 접고 다음날 고국행 비행기를 탔다. /이석우 기자 yep249@chosun.com◆"요즘은 우리가 불법체류자 눈치보고 산다"

전국에는 23곳의 외국인보호소가 있다. 대부분 지역 출입국관리소에 붙어 있는 소규모 보호시설이다. 단독으로 보호시설만 있는 곳은 화성과 청주 두 곳뿐이다. 그 중에서도 2001년 지은 화성외국인 보호소는 최신 시설이다.

이곳은 수감실마다 샤워 시설과 공중전화가 비치돼 있다. 경기도 지역 예술·체육단체가 찾아와 거의 매주 2~3회씩 한국 전통 무용, 태권도 강습, 사물놀이 강습, 노래자랑 프로그램도 열어 준다. 운이 좋으면 6개월에 한번씩 하는  건강검진을 받는 행운을 누릴 수도 있다. 2006년 여수외국인보호소에서 9명이 화재로 숨지는 사건이 발생한 이후 생겨난 프로그램이다. 당시 법무부와 외국인보호소에 엄청난 비난이 쏟아졌고, 인권단체와 국가인권위원회까지 나서서 수용시설의 인권침해 여부에 대한 감시를 강화했다.

화성보호소 박영순 소장은 "불법체류자를 추방하기 위해 운영하는 보호시설이지만, 요즘은 우리도 외국인 노동자 눈치 많이 보고 산다"고 말했다.



◆불법체류자도 친한파로 만들어야

지난해 10월 부인과 함께 한국으로 온 중국인 왕룽지앙(29)씨는 지난달 2일 부인이 단속반에 적발됐다. 입국 8개월 만에 강제 추방될 처지다. 그의 부인은 도망칠 요량으로 주머니에 있던 목걸이를 삼켰다. 그러나 끝내 청주외국인보호소로 이송돼 버렸다. 왕씨는 "아내가 전화로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배가 아파 죽겠다고 하는데도 한국 정부는 무조건 괜찮다고만 한다"고 불만스러워했다. 왕씨 부부는 1인당 1300만원씩 송출비용으로 지불했지만, 아직 절반도 갚지 못했다. 그는 "한국 사람들 너무 나쁘다. 그놈(아내를 잡아 간 단속반원)은 가만 놔두지 않겠다"고 했다.

불법체류자 단속을 담당하고 있는 법무부도 단속 과정에서 최소한의 인권은 보장한다는 것이 원칙이다. 그러나 단속인원 800여명이 한 해 3만여명씩 단속하는 과정에서 우발적인 사건이 곳곳에서 터지고 있다. 지난 7일에는 서울출입국관리소가 임신 8개월 된 필리핀 여성을 단속해 구금했다가 인권단체의 거센 항의를 받고 풀어준 일도 있다.

인권단체들은 불법체류자를 단속하더라도 최소한 이들이 한국에 대해 적개심은 품지 않도록 배려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경남외국인노동자 상담소 이철승 소장은 "한 해 10만 명이 넘게 들어 오는 외국인 노동자들도 고국으로 돌아가면 '친한파(親韓派)'가 될 수도 있다"며 "우리나라의 국익을 위해서라도 불법체류자 단속 때 임산부를 잡아 들이거나 과도한 물리력을 사용하는 것은 자제해야 한다"고 말했다.


"불법체류 단속기조 유지" "필요 인력은 적극 껴안아야"
합법과 불법사이, 외국인 노동자
<5·끝> 좌담 : 법과 온정(溫情) 사이
"조선족들 싼 값에 일해… 국내 취약층 더 소외시켜
노조 결성해 세력화하는 건 세계 어디에도 없는 일"
"年 3만명 내보내도 한 달에 6000명씩 새로 생겨나
숙련되고 말 통하는 불법체류자, 양성화 길 열어야"

1년에 3만명을 쫓아 보내도, 한 달이면 6000명의 불법체류 외국인노동자가 새로 생겨난다. 10년 이상 머물러 한국사람이 다 된 불법체류자만 2만2000여명. 무조건 끌어안을 수도, 다 내쫓을 수도 없다. 해법(解法)은 어디에 있을까. 서로 다른 현장에서 같은 문제를 고민해 온 김창석 법무부 조사집행과 과장, 이규용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경제학박사), 이민우 한국노총 정책본부 기획정책실장, 이철승 경남외국인노동자상담소 소장(목사)이 조선일보 편집국에서 만났다.


▲이규용 위원=논의에 앞서 불법체류자가 왜 문제가 되는지에 대한 공감대가 필요하다. 열악한 근로조건을 견디며 생산에 기여하는 사람들인데 문제될 게 뭐가 있느냐는 주장도 있다. 불법체류 외국인노동자는 전 세계에 3000만~4000만명으로 추산된다. 처음엔 불법체류자들이 국내 노동자들이 기피하는 일자리로 가지만, 체류기간이 길어지면 결국 국내 노동시장을 잠식하게 된다. 인력이 넘쳐 국내 근로자들의 임금과 근로조건까지 떨어뜨리는 문제도 생긴다.

▲김창석 과장=지난 3월 법무부 홈페이지에서 역점 추진 과제에 대해 여론조사를 벌였는데, '불법체류자 단속'이 '법질서 확립'을 누르고 1위를 차지했다. 불법체류자가 사회문제가 됐다는 것을 절실히 깨달았다. 요즘 법무부에 불법체류자 단속 왜 안 하느냐는 항의전화가 많이 온다. 한 달간 매일 새벽 인력시장에 나갔는데 조선족들 때문에 번번이 허탕을 쳤다는 거다. 정식 일당은 9만원인데, 조선족은 6만원을 받는다고 한다.

▲이민우 실장=경제가 나빠져 하반기 실업률이 크게 오를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그렇게 되면 국내 근로자들도 무슨 일이든 하려고 달려들 테고, 외국인노동자들과 첨예한 갈등이 일어날 수 있다. 국내 취약계층이 더 소외되는 일도 벌어질 수 있다. 외국인노동자가 종사하는 업종을 미리 제한해야 한다.


서로 다른 현장에서 외국인노동자 문제를 고민하던 이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왼쪽부터 김창석 법무부 조사집행과 과장, 이철승 경남외국인노동자상담소 소장, 이민우 한국노총 정책본부 기획정책실장, 이규용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 /전기병 기자 gibong@chosun.com
▲김창석=시민단체에선 정부의 단속을 인권침해라고 주장하지만, 근로현장에서 임금을 착취 당하고 구타 당하면서도 신분상 약점 때문에 신고조차 못하는 것이야말로 심각한 문제다. 또 이들이 오랫동안 열악한 주거환경에 모여 살면서 지역이 슬럼화되는 것도 문제다. 전국에 이런 곳이 52곳 된다.

▲이철승 소장=외국인력을 관리하는 정책이 처음부터 제대로 설계됐다면 이렇게 급격하게 불어나진 않았을 거다. 정부가 초기에 민간단체와 사용자단체에 맡기고 방임해버린 탓이다. 사회문제로 떠오르고 나서야 정부가 나섰지만, 이미 불법 노동시장은 너무 커지고 만연됐다.

▲김창석=정책 실패라는 주장은 일면 수긍하지만, 그보다는 여러 환경적 요인이 많이 작용했다. 자진출국 프로그램 등 유화조치를 거듭하면서 생긴 기대심리, 불법체류 외국인은 '법 위반자'가 아니라는 온정적 시각도 작용한다. 단속을 '악'으로 보는 사회 분위기, 시민단체에서 오직 '인권'만을 중시하는 것도 문제를 풀기 어렵게 만든다. 사회적 약자인 외국인노동자들을 보호해야 하지만, 불법체류자들이 노조를 결성하고 조직적으로 세력화하면서 단속관청 앞에서 정책 반대 시위를 하고 정치집회까지 참여하는 것은 어떻게 봐야 하나. 세계 어느 곳에도 없는 일이다.

▲이규용=합법적인 취업은 노동3권이 보장되지만, 불법체류자라면 원론적으로 재고해볼 여지가 있다. 만약 노조를 만들었는데 목적이 정치적인 방향 등 다른 쪽으로 활용될 경우엔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생각해봐야 한다.

▲이민우=집회 결사의 권리는 특정 국가나 국민에게 한정되는 것이 아니다. 보편적인 권리다. 단결권·단체교섭권도 그들이 원한다면 당연히 보장돼야 한다.

▲이철승=외국에서도 불법체류자들이 노동조합에 가입하고 있다. 불법체류자끼리 모이는 것은 아니고, 체류신분에 관계없이 그 나라 노조에서 받아주면 가입한다. 노동자의 단결권을 금지하는 것은 헌법정신에 위배된다. 사실 외국인노동자의 노조 가입률은 매우 낮은 수준인데, 한국사회가 과민 반응하는 경향이 있다. 사회의 극히 작은 부분에서 일어나는 일을 금지하고 법을 만들고 논쟁할 필요가 있나.

▲김창석=결국 불법체류자를 '근절'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어느 나라에나 있는 문제다. 다만 정부는 불법체류자가 국내 체류 외국인의 10% 선이면 국가가 관리할 수 있다고 판단해 이를 목표로 삼고 있다. 일본은 2003년 불법체류자가 23만명에 이르자 향후 5년간 일절 유화조치를 쓰지 않고 절반으로 줄이겠다고 공표했다. 5년 뒤인 현재 15만명으로 줄었다. 법을 위반하면 처벌 받는다는 인식을 확실히 심어준 덕분이다. 우리도 같은 기조로 가야 한다.

▲이철승=정책적 수단으로 불법체류자에 대한 양성화를 적극 검토해야 한다. 단속과 같은 행정조치로 해결하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단속 공무원은 180명, 보호소 수용 능력이 1200명인데, 단속 대상은 23만명이다. 하루 200명씩 한 해 4만~5만명이 단속 가능한 최대치인데, 불법체류자는 한 달에 6000명씩 새로 생겨난다. 아무리 단속해도 늘어나는 것이 현실이다.

▲김창석=단속의 한계는 분명히 있다. 그러나 지난 1년간 단속 기조를 지켰더니 3만6000명이 자진 출국했다. 단속 기조를 지키면 자진출국 분위기가 잡힌다. 2003년 불법체류자 18만4000명을 합법화하고 최대 2년간 체류하게 해줬는데, 정해진 기한 내에 출국한 사람은 40%에 불과했다. 60%는 다시 불법으로 전락한 것이다. 양성화는 단기적으로 숫자를 줄이는 효과가 있을 뿐, 결국 기대심리만 주고 실패하고 만다.

▲이철승=국가가 국익을 생각한다면 우리에게 필요한 인력에 대해서는 유화적인 정책을 병행해야 한다. 고용주 입장에서는 일도 숙련되고 말도 잘 통해서 놓치고 싶지 않은 불법체류자들이 있다. 그런 사람들에 대해서는 양성화하는 길을 열어서, 우리 사회에서 함께 살아갈 수 있고 함께 살 필요가 있는 이들을 검증해내자는 얘기다.

▲이민우=외국인노동자보다는 고용주에 대한 처벌과 단속을 지금보다 엄중하게 해야 한다. 기업이 불법체류자를 고용하는 것은 비겁한 행위다. 불법이든 합법이든 외국인노동자의 총량을 규제하는 것은 어떨까. 총량을 묶어놓은 상태에서 불법체류자를 양성화하고 빠져나가게 하는 것이 효과적이라고 본다.

▲이규용=고용주 단속에도 엄청난 행정비용이 들어간다. 따라서 고용주들이 불법체류자들을 쓰려는 원인을 제거하는 것이 효율적이다. 영세한 업체들 입장에서는 고용과 해고가 간편하고 4대 보험에 안 들어도 되는 불법체류자들을 고용하는 것이 이득이 된다. 이런 요인들을 분석해서 정책 수단으로 써야 한다. '한국에 불법으로 갔더니 일자리가 없더라'는 인식이 퍼지면, 단속 이상의 효과를 낼 것이다.

▲김창석=정부는 단속뿐 아니라 사전방지 작업에도 주력하고 있다. 불법체류자 가운데 관광비자 등으로 들어오는 사람이 47%다. 단기 체류로 들어오는 외국인 100명 중 1명꼴로 이탈하고 있다. 이 때문에 외교적 마찰을 감수하고 지난해 1만9000명을 공항에서 돌려보냈다.

▲이철승=한국이 이민국가를 표방하고 있지 않은데도 실제로는 진척되고 있다는 게 문제다. 독일의 경우 1980년대 후반부터 외국인노동자에 대해 보수적인 정책을 썼는데, 그 결과 1993년까지 외국인 혐오에 의한 범죄가 6000건 넘게 발생했다. 보수적인 정책을 써도 좋은데, '외국인은 다 범죄자'라는 인식이 퍼져 사회적 갈등이 생길 수 있음을 유념해야 한다. 독일의 사례를 교훈 삼아 사회통합을 염두에 둔 정책을 만들어야 한다.

▲이규용=앞으로 고령화, FTA 등 국가 간 인력이동이 많아질 수밖에 없는 시대가 온다. 한국사회는 개방을 지향한다고 하면서도 막상 준비 안 된 부분이 많다. 사회와 국민의 전반적인 학습과정과 문화 인프라가 같이 가야 한다.

▲김창석=다민족 국가로 가는 건 거스를 수 없는 대세다. 혈통주의와 단일민족 정서를 극복하고, 차이를 서로 존중하고 포용하는 사회 분위기를 조성해야 한다. 일본도 향후 50년을 내다보고 현재의 경제력을 유지하기 위해 전체 인구의 10%를 외국인으로 받아들이는 법을 만들고 있다. 우리도 준비할 것은 준비하고, 받아들일 것은 받아들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