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현장을 가다]“이주노동자 없으면 농사도 못 짓는다”
      
(  2008-5-21 기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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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인의 날’ 맞아 되돌아 본 양구지역 태국인 노동자 화재 참사 1년

20일은 외국인에 대한 차별을 버리고 다른 문화와 전통을 포용하자는 뜻에서 정부가 마련한 ‘세계인의 날’.

도내에서도 이를 기념하기 위해 결혼이민자와 이주노동자 등 1,000여명이 참가하는 ‘다민족 다문화 어울한마당’이 춘천호반체육관에서 열렸다.

그러나 불과 1년전인 지난해 4월30일 양구지역에서는 고랭지 밭에서 일하던 태국인 노동자 3명이 추위를 견디기 위해 컨테이너에 전기장판을 깔고 자다 화마로 목숨을 잃었다.

불법체류자였기 때문에 죽어서도 한달 가까이 영안실 냉동고에 방치되는 설움을 겪었다.

1년만에 다시 찾은 양구지역은 젊은 일손이 떠난 자리를 여전히 만리타향에서 온 ‘불안한’ 외국인 노동자들이 메우고 있었다.

그들은 어려운 농민들의 고마운 이웃이었다.

젊은 사람 다 떠나가 일손 부족… 태국인 고용으로 겨우 메워

20일 양구지역의 농민들은 삼삼오오 모여 땀으로 범벅이 된 채 논과 밭을 일구고 있었다.

대단위 고랭지 밭에 간간이 보이는 농민들의 모습은 1,650㎡에 이르는 광활한 논과 밭에 비해 턱없이 부족해 보였다.

이앙기가 논두렁에 빠져 흙탕물을 온통 뒤집어 쓴 마을 이장 최모(47)씨는 “젊은 사람 다 떠나가 농사일손이 턱없이 부족하다”며 “그나마 최근 이 일대로 모이고 있는 태국인들을 고용해 부족한 일손을 겨우 메우고 있다”고 했다.

하지만 이 마을 어디에서도 태국인을 찾아볼 수 없었다.

지난 14일과 15일 밤 춘천출입국관리소가 대대적인 단속을 벌여 37명의 태국인이 춘천교도소로 압송됐기 때문이다.

그날 이후 태국인들은 모두 인근 야산으로 숨어들어 도무지 찾을 수가 없다는 것이 주민들의 설명이다.

이들은 도시에서 일하는 외국인 노동자들로부터 단속에 대한 소문만 들려와도 산으로 숨어 잠잠해질 때까지 지내곤 한다고 주민들은 전했다.

이장의 소개로 어렵게 한 태국인 노동자 부부를 만날수 있었다.

2년전 인간적인 대접을 받으며 돈도 벌 수 있다는 친구의 얘기를 듣고 아내와 함께 이 마을로 온 A(39)씨는 검게 그을린 얼굴과 팔뚝이 이미 농사일에 이력이 난 모습이었다.

그는 일당 5만원을 받으며 한달을 꼬박 일해 150여만원을 번다.

이 중 20만원 숙박비, 70만원은 식비와 생활비로 쓰고 60만원은 고향으로 보낸다.

A씨는 “마을 사람들이 너무 잘해줘서 이곳에서 계속 일하고 싶다”면서“아직 돈을 더 벌어야 하는데 단속에 적발돼 고향으로 쫓겨날까봐 경찰만 봐도 놀란다”고 했다.

고향에 두고 온 아들 2명을 얘기할 때는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A씨는 “고향의 아들은 부모님이 키우고 있다”며 “가족이 너무 보고 싶지만 돈이 잘 모이지 않아 언제 갈 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양구군 관계자는 “이 마을은 1가구당 경지면적이 1만평을 넘어 외국인노동자 없이는 농사가 불가능하다”며 “지난 해 컨테이너 박스에서 화재로 숨진 외국인노동자에게 주민들이 성금을 모아 장례를 치러주는 과정에서 정도 많이 들었다”고 말했다.

이어“무조건 단속만 하는 방법으론 농촌지역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며 “농촌의 외국인 노동자를 양성화, 합법화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관계당국은 여전히 외국인 노동자에 대해 강경한 입장이다.

마을단위로 영농조합을 결성해 노동부에 외국인 노동자 고용을 신청하는 고용허가제 등 합법적인 방법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불법체류자를 고용하는 것은 고용인이나 피고용인 모두에게 좋지 않은 결과를 가져올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출입국관리소 관계자는 “지난 10여년동안 수차례에 걸쳐 외국인 노동자를 양성화해 왔다”며 “외국인노동자에 대한 합법화의 요구를 모두 들어주면 법을 지키는 대다수의 외국인과 고용주들이 선의의 피해를 입는다”고 말했다.

국내 불법체류자는 이미 20만명을 넘어섰다.

도내에는 4월말 현재 1만2,800여명의 외국인이 등록돼 있으며 이 가운데 15% 정도가 불법체류자인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안산 등 수도권 지역에서 유입된 불법체류자까지 합하면 최소 3,000여명이 넘을 것으로 보인다.

김미영·최기영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