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안의 인종주의 ‘빨간불’
“한국사회 구조 문제로 인식하는 성찰을”
이재환 기자 황현선 인턴기자
지난 10일 저녁 9시 15분경. 인도인 보노짓 후세인 씨(성공회대 민주주의연구소 연구원·아시아대안교류회 ARENA 간사)는 ARENA(아레나)에서 같이 활동했던 한국 여성 김선영(가명) 씨와 부천 인근에서 함께 탄 버스 안에서 큰 봉변을 당했다.

“더러워 너, 이 XXX야.”, “너 어디서 왔어, you Arsb!” 버스 뒤편에 있던 취중의 한국남성 서기원 씨(가명)의 욕설과 모욕이 쏟아졌기 때문이다. 김선영 씨가 “왜 이러냐”고 저지해도 서 씨는 아랑곳하지 않고 오히려 “넌 뭐야? 조선X 맞아?”라고 대꾸하며 보노짓 씨에 대한 공격을 멈추지 않았다.

서 씨의 행패가 계속되자 김 씨는 버스운전사에게 경찰서 행을 부탁했고, 버스 안 한국 승객도 서 씨에게 그만 둘 것을 요청했다. 실랑이 끝에 김 씨는 서 씨를 부천중구경찰서로 끌고 왔다. 서 씨를 저지하고 증인을 자처한 버스 안 또다른 여성 승객과 함께였다. 이 과정에서 김 씨는 서 씨로부터 가슴을 눌리는 등 성폭력적 행패를 당했다고 주장했다.

“더러워…” 보노짓 씨의 봉변

도망치려는 서 씨를 이끌고 온 경찰서에서 다시 지구대로 이송되는 과정에서도 서 씨는 “냄새나고 에티켓 없는 X”, “한국여자가 왜 저러는지 모르겠다” 등 모욕적인 말을 계속 했다. 지구대에서도 서 씨는 김 씨에게 “한국사람끼리 그냥 화해하자”, “상식없는 사람들” 등의 발언을 하며 김 씨를 괴롭혔고, “저리 가라”고 대꾸하는 김 씨와 지구대 안에서 쫒고 쫒기는 일을 반복했다. 경찰은 합의를 종용했으나 보노짓 씨와 김 씨는 “법적 절차를 밟아 모든 일이 기록되길 원한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내가 백인이었다면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 확실하기 때문이다.” 보노짓 씨의 입장이었다. 현재 서 씨와 보노짓, 김 씨는 모욕죄 혐의로 서로 고소를 한 상태다. 서 씨가 보노짓 씨를 맞고소 한 것은 계속되는 서 씨의 행패를 지켜보다 한차례 가운데 손가락을 이용한 욕설 몸짓을 했다는 이유다.


<시민사회신문DB>
한국사회 깊숙이 자리잡고 있는 인종주의적 차별 문제가 공론의 장에 오르고 있다. 성찰과 변화의 움직임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지난 2007년 한 다문화축제장에서 전통음식을 만들고 있는 스리랑카인과 한국인의 모습.

‘우리 안의 인종주의’가 더 이상 방관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는 지적이 높다. 보노짓 씨 사건은 지금 이 시간에도 한국사회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을지 모르는 인종차별적 모욕과 폭행의 한 단면이다. 하지만 동남아시아 ‘외국인 노동자’를 특정한 인권침해라는 관점의 반성과 수혜적 개선노력은 있어도 한국 사회 뿌리깊은 인종주의에 대한 성찰은 매우 부족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시민사회단체 역시 인종주의적 차별의 관점에서 현실과 근원을 톺아보지 못한다는 지적에 자유롭지 못하다.

이미 한국은 지난 2007년 유엔 인종차별철폐위원회(CERD)로부터 “한국 사회의 다민족적 성격을 인정하고, 실제와는 다른 ‘단일 민족 국가’라는 이미지를 극복해야 한다”며 “특히 한국에 사는 모든 인종·민족에 관한 이해와 관용을 초중등 학교 교과목에 포함시킬 것”을 권고받기도 했다. 한국의 배타적 인종주의를 경고한 셈이다.

인권차별 관점 넘어 진전 요구

이같은 우려는 한국과 아시아의 관계 악화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보다 현실적인 문제로 다가올 가능성을 안고 있다. 최근 호주에서 있었던 인도인 학생에 대한 인종주의적 공격이 인도 언론에 알려지며 반호주 정서가 급격히 높아지고, 급기야 호주 당국이 자국민의 인도여행 주의를 당부한 사례도 있다. 이미 한국은 베트남 여성 ‘매매혼’ 논란으로 베트남 국민들의 공분을 산 일이 있다.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지난해 90일 초과 국내거주 외국인주민(국적취득자, 불법체류자 포함)은 89만1천341명으로 인구의 1.8%에 해당하고 있다. ‘1백만 외국인 시대’, ‘다문화’를 외치지만 인종주의적 차별에 대한 예방적 조치가 사실상 전무한 현실에서 ‘보노짓 씨 사건’은 한국사회에 시급한 경고를 보내고 있다. 보노짓 씨는 현재 민형사상 대응과 더불어 인권위원회에 직권조사를 요청할 계획이다.

"인종주의 장벽을 직시하라"
최근 잇따른 사건과 징후… 공론화 확산

“보노짓 씨 사건을 제대로 보기 위해선 한국 사회의 인종주의적 차별을 직시해야 한다.”

지난 10일 벌어진 인도인 보노짓 후세인 씨의 한국남성에 의한 인종차별적 모욕 사건을 통해 한국 내 인종주의라는 그림자의 실체를 드러내고 사회적 성찰의 계기가 돼야 한다는 요구가 높아지고 있다.

마침 이달 초 ‘아사이 결혼 이주자의 법적 지위와 현실’을 주제로 한국에서 예정된 국제회의에 참석하려던 필리핀 여성이 국외 한국영사관 등으로부터 ‘불법취업 체류자’라는 단정적 의심을 받고 입국이 무산된 일도 있었다. 국내에서 다양한 범죄를 저지르며 사회문제화 되고 있는 백인 영어강사 등이 상대적으로 쉽게 입국하는 현실과 대비되는 사건이었다.

국내 한 방송사의 외국인 여성 참여 토크쇼에서도 백인 또는 한국인과 비슷한 일본·중국 등의 출연진과 대비할 때 흑인이나 동남아시아 여성 참여 비율은 매우 낮다. 기획의 찬반, 제작진의 개선노력 여부를 떠나 ‘미’(美)를 전면에 내세운 프로그램에서 이같은 비율을 나타내는 것은 우리 사회 뿌리 깊은 인종주의적 선호에서 자유롭지 못함을 반영하고 있다.

‘피부가 하얗거나 노랗지 않은’ 한 출연자가 인종차별 사례를 방송 중 몇차례 눈물까지 비치며 이야기해도 얕은 ‘반성’으로 마무리 하고 만다. 제작진을 탓하기 전에 인종주의에 대한 사회전반의 척박한 인식과 감수성부터 짚어봐야 할 문제다.  

‘보노짓 씨 사건’만 하더라도 취객의 행패 정도로 치부할 수 있지 않냐는 식의 인식이 존재한다. 하지만 다른 국적 또는 인종간 벌어진 이와 유사한 사건을 처리할 때 인종차별적 요인을 적극 고려하는 외국의 사례를 본다면 이 역시 재고돼야 할 인식이다.

오창익 인권연대 사무국장은 “만약 보노짓 씨가 서양인이었다면 그런 대접을 안받을 가능성이 컸을 것”이라며 “우리 내부의 백인위주 인종적 편견이 폭력적 형태로 나타남을 확인할 수 있는, 누가 봐도 부끄러운 일”이라고 지목했다.

◇인종차별 규제책 미비=보노짓 씨 사건의 법적 자문을 맡은 황필규 공익변호사그룹 ‘공감’ 변호사는 “인종차별 형태는 그동안 매우 다양하게, 무수한 사례가 있었지만 법적으로 조명된 적이 제대로 없었다”며 “인종차별적 발언으로 모욕죄가 형사사건이 되는 경우가 그동안 없는 등 법제의 한계가 있지만 이번에 제대로 법적 대응과 함께 인종주의적 차별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겠다는 의지가 모아지고 있다”고 밝혔다.

유엔 인종차별철폐위원회(CERD)는 지난 2007년 한국정부에 보낸 권고문을 통해 “인종 차별 행위들을 처벌하는데 활용 가능한 현 형법 조항들이 한국의 법정에서 한 번도 적용된 적이 없는 것에 우려를 갖고 주목한다”고 명시한 바 있다. 한국 내에서 인종 차별 관련 진정이 없는 배경과 관련해선 관련 법제의 미비, 법적 구제 가능성에 대한 인식 부족, 기소 당국의 의지 부족 등이 문제일 수 있다고 덧붙였다.

한편 보노짓 씨 사건의 수사를 맡았던 경찰의 처리과정에 대해서도 논란이 일고 있다. 보노짓 씨 및 그와 동행한 김선영(가명) 씨는 “사건을 다루는 경찰의 태도 역시 인종차별과 몰성적 처우가 있었다”고 지목하는 상황이다. 조사과정에서 한국 남성의 2차 모욕행위가 있었음에도 적절히 대처하지 않고, 보노짓 씨의 신분증 확인 절차에서도 차별적 대우가 있었다는 것이다.

해당 부천중부경찰서는 현재 감사계 조사를 진행 중이다. 감사계 관계자는 “담당 경찰관을 불러 확인 중에 있다”며 “신분증 확인 절차에서 발생한 논란은 크게 문제가 없는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황필규 변호사는 “조사과정에 대한 대응도 신중하고 치밀하게 고민하고 있다”고 밝혔다.

◇폭넓은 내부 성찰 모색=“한국에 와서 결혼이주자 단체 등과 함께 활동을 한 적이 있다. 여기서도 볼 수 있었던 것은, 중앙아시아 등지에서 온 결혼이주자에 대해선 한국 사람들이 처음엔 대우가 좋다. 외국인이니 영어도 잘 할 것이라는 편견이 앞선다. 하지만 영어가 안 통한다고 하면 태도가 돌변한다. ‘영어 잘하는 백인’에 대한 선호가 매우 높다.

또 결혼이주자를 대할 때 특히 동남아시아인의 경우 ‘송출국-유입국’ 논리를 앞세운다. ‘한국이 잘사니 돈벌어 고향에 보내려고 결혼한 사람을 우리는 받아들이는 나라’란 인식이다. 그렇다면 한국기업이 베트남에 가서 투자해 저임금에 이익을 얻어 돌아오는 것은 무엇이란 말인가. 송출국과 유입국 사람이 나눠지는 것이 아님에도 이주자를 받아들이는 한국 사람들의 편견이 크다.”

성공회대 ARENA(아시아대안교류회)에서 근무하는 대만인 진홍영 씨의 말이다. 국내 외국인들 중 큰 축을 차지하는 결혼이주자에게도 백인우대·경제논리의 인종주의적 차별이 크다는 지적이다.

이처럼 폭넓게 자리 잡고 있는 한국의 인종주의적 편견에 대해 박석진 인권운동사랑방 활동가는 지난해 ‘한국 사회의 인종차별주의를 고발한다’는 글에서 “한국 사회는 근대사적으로 일본과 미국의 강력한 영향 아래 전 세계적인 인종주의 질서에 편입돼 있다”며 “동남아인들에 대한 한국 사회의 인종차별은 드러나지 않았을 뿐 잠재되어 있었고, 이는 역설적으로 백인에 대한 동경 현상을 통해 한국 사회는 이미 인종주의적 사회라고 판단할 수 있는 셈”이라고 지목했다.

구체적으로 박석진 활동가는 “이주민들이 우리 사회에 본격적으로 유입되기 시작하면서부터 형성된 인종주의는 국가별 경제력의 차이에 따른 차별과 결합하면서 출신국가 및 경제적 상황에 따른 차별로 먼저 드러난다”며 “이주민 문제가 이주노동자·결혼이주자·이주민 자녀 등의 주체로 분절되는 것이 아니라 문제들을 꿰뚫고 있는 우리 사회의 구조적·이데올로기적인 문제를 지적함으로써 통합적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시민사회도 자유롭지 못해”=한국 사회 인종주의 논란은 시민사회도 예외가 될 수 없다는 지적이다. 이대훈 성공회대 NGO대학원 외래교수는 “이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운동단체들의 담론을 살펴보니 인권침해나 차별이라는 관점은 보이지만 인종차별과 인종주의로 적극 설명하진 못하고 있다”며 “인종주의란 비서양과 서양의 구분 문제 정도로 파악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자세히 보면 민족주의적 자부심 때문에 인종주의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모습도 보인다”고 꼬집었다.

급속한 고령화 사회로 진입하는 한국은 노동력 확보를 위해서라도 향후 외국인들을 지속적으로 받아들일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인종주의라는 장벽을 한국의 시민사회가 스스로 뛰어넘어야 할 과제가 눈앞에 놓여있다. 박명림 연세대 교수는 “세계화 시대, 누구나 이민자와 소수자가 될 수 있다”고 강조한다.

“가부장적 민족주의 느낀다”
“백인 영어교사는 왜 노동자로 인식 않는가”
‘인종차별’ 사건 당사자 보노짓 후세인 씨


한국사회 인종차별의 문제가 최근 시민사회 내에서 확산되는 계기가 된 ‘보노짓 씨 사건’의 당사자 보노짓 후세인((성공회대 민주주의연구소 연구원·아시아대안교류회 ARENA 간사, 사진) 씨는 “인종주의 문제 인식은 한국 사람들에게 당면한 문제”라고 밝혔다.

-사건이 벌어진지 수 십일이 지났다. 지금 심정은.

▲외국인에 대한 차별이라고 하면 보통 외국인 노동자를 이야기한다. 그리고 더 이상 깊숙이 들어가지 않는다. 외국인 차별의 뿌리가 무엇이고, 현재 어떤 모습인지 한국 사회는 별로 따져 보지 않는 것 같다. 같은 외국인이라도 백인을 보는 시각과 피부색이 어둡거나 흑인에게는 다른 기준이 적용된다. 인종주의적인 외국인 차별이 있다. 말하자면 세계질서와 연관된 인종주의인 것 같다. 경제적 낙후 국가는 인종적으로 낙후됐다고 간주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한국이 다른 나라보다 더 심하다고 생각하는가.

▲많은 나라를 다녀본 것은 아니지만 남아시아 국가들과 비교한다면 한국이 확실히 더 심한 것 같다. 남아시아 국가에서도 하얀 피부를 가진 외모를 선호하지만 한국처럼 ‘아름답다’식으로 보지 않는다. 인종적 외모를 선호하는 경향이 강하게 느껴진다. 왜 그런가에 대한 답변은 충분히 하기 힘들지만 짐작컨대, 서양을 따라잡아야 한다는 집착이 느껴진다. 경제수준 따라잡기를 넘어 인종주의화 된 서양을 따라가려는 집착이 느껴진다.

-비슷한 사례가 개인적으로 이전에도 있었나.

▲한국에 온지 2년 반쯤 됐다. 이번 건은 가장 강도가 높았지만 유사하게 느낀 경우는 많다. 지하철에서 옆 좌석에 앉은 사람이 갑자기 일어서거나, 한 두마디 화가 난 어조로 욕설을 하고 가는 경우가 있었다. 이번 건의 경우 왜 그 사람이 그렇게 공격적으로 행동했을까를 생각해보면, 한국 여성과 같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젊은 한국 여성과 같이 있었던 것이 ‘그들은 우리 것을 뺏어가는 사람’이라는 인식과 성차별적 요소까지 더해져 공격적으로 나왔던 것 같다. 인종주의가 어떻게 한국사회에서 더 심하게 작동하는가를 보여준다. 가부장적 민족주의에서 여성은 민족적 자부심의 담지자이기 때문이다.

-최근 들어 더 이같은 경향이 심해졌다고 느끼진 않는가.

▲특별히 그렇게 느끼진 않는다. 한국에 있다 보니 인종차별에 대한 인식이 지속적으로 존재해 왔음을 느끼고 있다.

-경찰의 조사과정에 대해선.

▲같이 있던 한국 여성과 욕설을 한 한국 남성을 조사 과정에서 같은 공간에 마주볼 정도의 거리에 있도록 한 것은 이해가 안간다. 인도도 가부장적이고 성차별적이지만 이같은 사건이 있으면 별도의 공간에서 조사를 한다.  

-한국민과 시민사회에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제가 발언할 수 있는 부분인지 모르겠지만, 이와 유사한 경우를 당해도 참고만 있을 많은 외국인들이 존재한다. 아마 개인적으로 받아들여 현실과 타협하며 적절하게 자기 생활을 할 것이다. 그러나 인종주의적 차별 문제는 구조적 문제로 한국사회가 받아들여 고민하고 대응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이런 것이다. 방글라데시나 인도네시아, 파키스탄 사람들은 외국인 노동자라고 특정지어 연상하지만 영어학원의 백인 영어교사는 외국인 노동자라고 하지 않는다. 이 자체가 인종주의적 인식의 개입이고, 한국사회의 당면한 문제이자 해결과제다.

한국의 인권단체와 시민사회도 많은 노력을 하고 있는 것을 알지만 인종주의 문제를 성찰하고 사회에 지속적으로 문제제기를 하는 노력을 확산시키는 것이 필요하다고 본다. 외국인 노동자 문제로 대상화하지 말고 한국사회, 우리의 문제로 다뤄야 한다.  

이재환 기자 황현선 인턴기자 ljh@ingopres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