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연휴 단속은 인권유린' 23일 오후 경찰청 앞에서 열린 '설 연휴 이주노동자 불법적 강제단속, 경찰청 규탄 기자회견'에서 민주노총 서울본부 최종진 본부장이 발언을 하고 있다. 이명익기자
이주노동자들에 대한 불법적 강제단속이 설 연휴에까지 자행돼 이주노동자 차별과 인권과 노동권 침해라는 규탄 목소리가 높다.
설 연휴 마지막 날인 지난 2월15일 낮 12시 경 서울 동대문 지역 한 네팔 식당에 경기도 경찰청 2청 직원들과 인천공항출입국 직원들이 들이닥쳤다. 그들은 비자가 없는 미등록 외국인 10명을 체포해 양주출입국관리소로 보내졌다.
경기도경이 주도한 이 단속은 애초 불법도박 혐의 관련 압수수색이었다. 그러나 도박현장은 발견되지 않았고 죄 없는 이주노동자들만 비자가 없다는 이유로 무참히 끌려갔다. 경찰은 제복 착용, 증표 제시, 방문 이유 고지 등도 지키지 않았다.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에 대한 영장이나 보호명령서조차 없었다. 설 연휴 날벼락을 맞은 이주노동자들은 현재 화성외국인보호소에 수감돼 강제출국 당할 처지에 놓였다. 무엇보다도 설 연휴에까지 강제단속을 자행한 것은 최소한의 인도적 기준마저 파괴한 것이라는 비난이 거세다.
설 연휴 이주노동자 불법적 강제단속을 자행한 경찰청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이 23일 오전 11시 경찰청 앞에서 이주공동행동 주최로 열렸다.
민주노총 서울지역본부 최종진 본부장은 “경찰이 명절 연휴 자신 신분도 밝히지 않고 법적으로 정해진 제반 규칙마저 지키지 않은 채 폭력만행을 저질렀다”고 전하고 “수 년 전 여수에서의 이주노동자들 참혹한 죽음을 상기할 수밖에 없다”면서 “이주노동자들의 인간답게 살 권리를 유린한 것에 분노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민주노동당 이수호 최고위원은 “경찰은 왜 우리 사회 가장 약한 자, 없는 자, 보잘 것 없는 자들에게만 공권력을 휘두르고, 불법을 밥먹듯 저지르는 재벌과 부자, 관료들에게는 경찰력을 행사하지 않느냐”면서 “이같은 무차별적 처참한 공격과 탄압을 다시는 하지 말라”고 역설했다.
'회견장 둘러싼 경찰' 회견장 앞은 전경버스로, 회견장 주위는 경찰병력으로 둘러싸인 경찰청 앞에서 민주노동당 이수호 최고위원이 경찰의 불법 단속을 규탄하는 발언을 하고 있다. 이명익기자
진보신당 박김영이 공동대표도 “경찰이 이주노동자들을 강제구금하고 폭력을 휘두르는 등 사람에 대한 사냥질을 벌였다”고 말하고 “이명박 정권 2년 간 공포정치 속에서 우리는 언제라도 그런 폭력을 당할 수 있다는 공포를 느끼며 살게 됐다”고 규탄했다.
외국인이주노동운동협의회 이영 사무처장은 “한국사회가 다문화가정이라고 한쪽으로 선전하면서 다른 한 쪽에서는 설 연휴에 집에도 못 가는 이주노동자들 밥상을 뒤집어 엎었다”고 비난하고 “이주노동자 차별과 강제추방정책을 자행하는 정부를 규탄한다”고 강조했다.
이주노조 한 조합원은 “두 얼굴의 파시스트 같은 거짓말쟁이 경찰이 우리 이주노동자들을 탄압하고 있다”고 지적하고 “정부는 대중 앞에 이주노동자들을 동정이라고 하듯 불쌍한 존재처럼 대하지만 우리에게 동정과 자선은 필요없으며 정의와 존중을 원한다”고 밝혔다.
이주노동자후원회 박하순 운영위원은 기자회견문 낭독을 통해 “영장 내용도 정확히 고지되지 않았고, 불법도박이나 폭력행위 정황이 없었는데도 경찰은 강제 신분검사를 통해 미등록 외국인을 연행하는 과정에서 영장이나 보호명령서, 식당주의 동의조차 없었다”고 전했다.
이어 “식당 내 사람들 전원을 강압적으로 감금하고, 결혼이주민 여성까지도 여성출입국 직원 없이 단속당했다”면서 “결과적으로 미등록 외국인 10명을 단속하려고 설날 연휴 경기도 경찰직원과 인천공항출입국 직원 수십 명을 동원, 공권력과 인력, 행정을 낭비했다”고 성토했다.
박 운영위원은 “한편에서는 다문화사회를 이야기하면서 설날잔치하며 떡국 만들기를 홍보하고 다른 한편에서는 무자비하게 단속의 칼날을 들이대는 것은 위선과 야만일 뿐”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또 “우리는 설 연휴 무리하고 불법적인 과잉 단속을 강력히 규탄하며 공식사과와 재발방지를 요구한다”면서 “우리는 이번 사건 진상을 철저히 규명하고 책임을 묻기 위해 끝까지 싸울 것”이라고 분명히 했다.
이주공동행동 등 이날 회견 참가자들은 설 연휴에조차 강제단속을 자행한 경찰과 출입국을 강력히 규탄하고, 경찰에 대해 ▲불법적 과잉단속 사과, 책임자 처벌 ▲이주노동자 강제단속 재발방지 약속 ▲반인권적 강제단속 중단, 미등록 이주노동자 합법화를 촉구했다.
회견 후 참가자들은 이주노동자들에 대한 강제단속 폭거에 항의하는 서한을 경찰청에 전달했다. 이주노조는 또 설 연휴 강제단속 현장이었던 식당 주인과 함께 이번 폭거를 국가인권위에 진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이날 회견에 앞서 경찰은 전경버스로 차벽을 만들고 전투경찰들을 대거 배치해 공포감을 조성했다. 또 서대문경찰서장은 확성기를 들고 “미신고 불법집회다, 즉시 해산하라”며 해산명령을 수 차례 일삼았다. 심지어 “현수막과 피켓을 들고 있는 것은 불법”이라고 협박했다. 기자회견을 노려보던 한 경찰은 “밟아!”라고 소리쳐 회견을 취재하던 기자들로부터 빈축을 샀다.
<홍미리기자/노동과세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