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레반 소동’ 검경의 오버액션 혐의 [2010.03.19 제802호]
[줌인] 대구 사는 파키스탄인 4년간 미행·도청하고도 간첩죄 물증 못 잡아…
출입국관리법 위반 등으로 ‘별건 구속’하고 호들갑
전종휘 김정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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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크의 부인 라시다가 3월10일 대구 중리동 집에서 남편은 탈레반이 아니라고 설명하고 있다. “탈레반이 애를 셋이나 데리고 한국에 와서 또 셋이나 낳고 살겠어요?” 한글을 독학으로 뗀 그는 귀화시험 문제집을 한 번 읽어달라고 하자 능숙하게 읽어냈다.
“탈레반 활동 혐의자 대구서 6년 암약” “탈레반 혐의자, ‘이맘’인 형으로 위장해 암약” “봉사·기부, 선동·협박… 탈레반 혐의자 ‘이중생활’”

지난 2월21일 경찰이 대구의 한 이슬람 사원에서 성직자로 근무 중인 파키스탄 남성이 이슬람 무장 학생단체인 ‘탈레반’ 조직원으로 활동한 혐의를 잡고 수사 중이라는 뉴스를 한국 언론이 전하며 단 제목들이다. 지난 2003년 ‘지아울 하크’의 여권으로 입국한 이 파키스탄 남성은 그로부터 2년 전인 2001년에는 지아울 하크의 친동생인 ‘안와르 하크’의 여권으로 입국했고, 최근에는 다른 파키스탄인들에게 “죽여버리겠다”며 협박까지 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국민을 불안에 떨게 했다. 한 방송사는 이 사건을 예로 들어, 올해 11월 서울에서 열린 예정인 주요 20개국(G20) 회의 때 테러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중동 전문가의 얘기를 전하기도 했다.

국내에 6년 동안 암약해온 탈레반 요원이?

테러리스트로 악명 높은 탈레반 세력이 국내에 몰래 진출해 활동하고 있다는 소식은 국민으로서는 깜짝 놀랄 만한 뉴스였다. 그는 정말 국내에서 테러 활동을 하거나 한국 체제를 혼란에 빠뜨리려고 암약한 위험 인물일까?

이 파키스탄 남성이 한국에 처음 온 건 2001년 9월이다. 그는 ‘안와르 하크’ 명의의 일주일짜리 여행비자로 입국한 뒤 대구에서 눌러앉아 일을 하다 2003년 6월 자진 출국했다. 그리고 두 달 뒤 그는 대구 이슬람 사원의 보증으로 종교인 비자를 받아 다시 한국에 입국했다. 안와르의 친형인 ‘지아울 하크’ 이름으로 된 여권을 들고서였다. 그는 한참 전인 1998년 파키스탄에서 결혼한 부인 라시다와 그곳에서 낳은 세 아이까지 2003년 한국에 데리고 왔다. 그는 예배를 열고 설교를 할 수 있는 이슬람 성직자인 ‘이맘’이었다. 이맘은 한국에 수십 명이 있지만 파키스탄 출신 이맘은 그가 유일하다. 나머지는 방글라데시나 스리랑카, 우즈베키스탄 출신이다.

하크는 한국에 살면서 3명의 아이를 더 낳았다. 그의 집안에서 아이가 느는 동안 대구 지역에서 이슬람 세력의 교세도 늘어갔다. 2005년에는 모금을 통해 대구 달서구 죽전동에 4층짜리 번듯한 사원 건물을 새로 짓기도 했다. 그러던 중 그의 주변에는 이상한 일이 잇따르기 시작했다. 그는 사원 말고도 대구 성서공단을 비롯해 대구·경북 지역의 작은 예배소 7곳과 인천·경기 등 다른 지방의 예배소까지 다니며 예배를 집전했는데, 그가 다녀가고 나면 그곳 담당자에게 경찰이 찾아오거나 전화를 걸어와 “하크가 무슨 말을 하고 누구를 만나고 갔느냐”고 물었다. 경찰은 몰래 그의 사진을 찍기도 했다.


 


심지어 그의 전화 통화 내용도 다 도청당했다. 3월10일 대구 이슬람사원에서 만난 그의 측근은 “하크가 경찰에서 조사받을 당시 통역을 도운 파키스탄 사람이 하크에게 ‘경찰이 당신의 통화 내용을 다 엿들었고 그 통화 내용을 내가 경찰에 번역해주기도 했다’는 말을 해줬다”고 전했다.

의심의 여지 없이 그는 감시를 당하고 있었다. 2008년에는 사원 옆에 그가 만든 한국이슬람복지재단 사무실에 경찰을 자칭한 인물이 들어와 인터넷선 등을 가위로 자르고 도망하는 사건까지 벌어졌다. 대구 성서경찰서에 가서 따졌더니 정보과 경찰이 와서는 “해결할 테니 기다리라”는 얘기를 했지만 아직까지 연락이 없다는 게 대구 중리동 집에서 만난 부인 라시다의 말이다. 그 뒤 그는 대구지방경찰청 앞에 가족을 데리고 가서 시위를 벌였다. 그리고 서울에 올라와 외교통상부와 대법원 앞에 가서도 시위했다. “나는 테러리스트가 아니니 제발 감시를 그만하라”는 요구였다.

» 사건 쟁점에 대한 주장 (※ 이미지를 클릭하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4년 전부터 국정원·경찰이 도청 등 내사

2008년 말께 파키스탄인들이 중고 중장비를 파키스탄으로 수출하는 과정의 비리 사건이 터지자 하크는 연루 혐의로 조사를 받았다. 하지만 경찰은 그의 혐의를 입증하지 못했다. 대구지방출입국관리사무소는 그를 불러 가짜 여권을 만들어 입국한 게 아니냐고 따지기도 했다. 이 역시 결국 무혐의 처분됐다.

국가정보원과 대구지방경찰청은 4년여 전부터 계속 그를 예의주시하며 내사를 벌여온 것으로 밝혀졌다. 대구경찰청 보안과 관계자는 <한겨레21>과의 통화에서 “4년여 전부터 우리와 국정원이 하크의 동태 관리를 해왔고 본격적인 수사는 경찰청 본청에서 했다”고 말했다.

그러던 중 경찰청 본청 외사형사계는 지난 2월18일 대구 중리동 집에 있던 그를 긴급체포하는 한편 재단 사무실과 집을 압수수색했다. 그러고는 두 곳의 컴퓨터 하드디스크와 각종 자료를 싹 쓸어갔다. 곧바로 그는 구속됐다. 영장에 기재된 혐의는 두 가지다. 출입국관리법 위반과 형법상 협박죄다. 수사기관이 가장 큰 관심을 가진 간첩죄 부분이 구속 혐의에서 빠졌으니, 일종의 ‘별건 구속’(핵심 혐의를 입증할 수 없을 때 곁가지의 혐의를 적용해 구속부터 하는 것)을 한 셈이다.

구속된 이는 자신이 현재 여권상 인물인 ‘지아울 하크’라고 말한다. 2001년 입국 때 동생 여권을 사용했지만 2003년에는 본인 여권으로 입국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경찰은 그가 ‘지아울 하크’가 아니라 친동생인 ‘안와르 하크’라고 본다. 2001년 본인 여권으로 들어왔다가 2003년에는 형의 여권을 썼다는 것이다. 결국 지난 2001년 입국 당시 여권(안와르 하크) 사진과 2003년 이후 쓰는 여권(지아울 하크) 사진 속 인물, 그리고 이 파키스탄 남성이 동일 인물인 점은 분명하지만, 그가 지아울 하크인지 안와르 하크인지에 대해선 본인과 수사기관의 주장이 엇갈리는 상황이다.

이 사건을 맡고 있는 법무법인 코리아의 정진성 변호사는 “그는 자신이 지아울 하크인데 2001년 입국 때 동생 안와르가 ‘형이 내 여권을 대신 써달라’고 부탁해 썼을 뿐 2003년 이후로는 자신의 본래 여권을 쓰고 있다고 주장한다”며 “이 경우 공소시효(5년)가 지났기 때문에 처벌이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는 2년여 전 가짜 여권 문제로 조사받을 당시 동생 안와르가 파키스탄에서 숨졌다는 사망증명서를 제출하기도 했다. 그러나 경찰은 다른 이름의 여권에 같은 사진을 붙였는데도 그대로 통용될 정도로 파키스탄 행정의 신뢰가 떨어지는 상황에서 해당 증명서를 믿기 어렵다고 본다.

검찰도 “결정적 물증은 없다” 밝혀

구속 사유 중 하나인 협박과 관련해서는 폭언이 오간 사실은 하크도 인정하고 있다. 파키스탄인 ㄱ씨는 대구에 사는 하크의 동생(안와르가 아닌 다른 동생)과 사업을 함께 했는데 그 과정에 문제가 생기자 하크가 자신에게 “너와 네 가족을 죽이겠다”며 협박했다고 그를 고소한 바 있다. 정진성 변호사는 “실제 협박을 해서 돈을 갈취하거나 상처를 낸 게 아니라 합의의 여지도 있고 집행유예나 벌금형에 그칠 수도 있는 사안”이라고 말했다.

무엇보다 이 사건의 핵심인 탈레반 활동과 관련한 혐의는 전혀 입증이 되지 않고 있다. 애초 경찰은 하크를 구속하면서 그가 스스로를 탈레반이라고 주변에 소개하고 다녔고, 주한미군의 군사시설 관련 정보를 탈레반에 넘겼으며, 영어를 가르친다는 명목으로 꼬인 한국인과 이슬람계 유학생들에게까지 ‘지하드’(성전)를 부추겼다고 밝힌 바 있다. 그가 마치 대단히 위험한 인물인 것처럼 발표한 것이다. 하지만 태산이 울고 떨 것처럼 떠들던 사건의 결과는 쥐 한 마리조차 나오지 않는 분위기다.

» 대구의 유일한 이슬람 사원 건물. 예배가 예정된 3월10일 오후 1시30분 이전부터 성서경찰서 순찰차가 사원을 정면으로 마주한 채 30여m 앞에서 20여 분 동안 지켜보다 돌아가는 모습이 관찰됐다.

하크의 지인은 “하크가 경찰에서 피의자 신문조서를 받을 당시 본인이 탈레반이며 관련 활동을 했다고까지 진술한 바 있다”며 “수사기관이 너무나 심하게 사생활을 감시하고 뒤지면서 자백을 강요하다보니 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그렇게 말했다는데 지금은 혐의를 전면 부인하고 있다”고 말했다.

오세인 서울중앙지검 2차장 검사는 3월11일 <한겨레21>과의 통화에서 “(탈레반 활동과 관련해서는) 정황은 있는데 결정적인 물증을 갖고 있지 않다”며 “두 가지 혐의(출입국관리법 위반과 협박죄)만 갖고 3월17일께 기소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4년여에 걸친 국정원과 경찰의 수사, 그리고 검찰의 구속수사 결과가 이렇다.

가족과 지인들은 “어떤 멍청이 탈레반이 경찰청 앞에 가서 ‘나 탈레반 아니요’라고 시위하고 국가인권위에 진정을 넣고 하겠는가”라며 이번 수사가 애초 무리한 기획 수사라는 주장을 펴고 있다. 하크는 지난해 12월 국정원과 경찰의 인권침해식 수사에 도저히 못 살겠다며 이를 조사해달라고 인권위에 진정했다. 인권위는 현재 국정원에 관련 내용을 질의한 상태다. 인권위 담당 조사관은 “현재 조사 중인 사안이라 구체적인 내용은 밝힐 수 없다”고 말했다.

하크가 한국에서 공개적으로 벌인 활동도 그가 탈레반인지를 의심케 한다. 그는 올해 초 아이티 대지진 때 2천만여원을 모금해 전달하는가 하면, 지난해 8월15일을 앞뒤로 대구 국채보상공원에서 광복절 기념 외국인 행사를 주도하기도 했다. 지난해 초에도 2천만원을 모금해 대구적십자사를 통해 팔레스타인에 부쳐준 바 있다.

학교 친구들에게 손가락질 받는 아이들

부인 라시다는 “우리 신랑은 탈레반 싫어한다”며 “탈레반은 자식들에게 총을 주지 공부를 시키지 않는다”고 말했다. 현재 그의 여섯 자녀 가운데 3명은 인근 초등학교에 다니고 있다. 그의 방에는 ‘국적취득 귀화시험 기출문제집’이 놓여 있었다. 독학으로 한글을 떼고 이미 애국가를 다 외웠다는 라시다는 남편이 잡혀간 뒤로 공부가 손에 잡히지 않는다고 했다. “수사기관의 감시가 본격화한 뒤로 남편이 밥도 제대로 못 먹고 비쩍 말랐다”며 라시다는 가슴 아파했다.

주변 인물들은 이번 사건이 파키스탄 사람들 사이의 알력에서 비롯됐을 개연성이 큰 것으로 본다. 사업비자로 한국에 들어와 있는 하크의 다른 친동생의 사업과 관련한 이해당사자들이 하크에 대해 좋지 않은 소문을 정보경찰 등에게 흘려왔다는 것이다. 서로 다른 이슬람 종파끼리의 다툼이라는 소문도 이 지역에서 떠돈다.

한편, ㄱ씨의 고소 사건 처리 과정을 보면 검찰과 경찰이 하크에 대해 과다한 선입견을 갖고 수사하는 게 아닌지 의문이 간다. 서울중앙지검은 지난 2월5일 이 고소 사건에 대해 증거 불충분을 이유로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 그러고는 불과 13일 만에 경찰이 하크를 체포하고 압수수색하도록 한 것이다. 형사사건에서 이런 경우는 드물다. 이에 대해 오세인 2차장검사는 “(간첩 부분 혐의는 빼고) 새 증거가 나타나는 등 사정 변경이 있다”면서도 “수사 중인 사안이라 구체적으로 밝힐 수 없다”고 말했다.

라시다는 가장인 하크가 탈레반으로 낙인찍힌 뒤 가족의 삶이 더 힘들어졌다고 말했다. 초등학교 4학년에 다니는 딸은 사건 이후 반 친구들이 손가락질하며 수군거려 “아빠랑 미국이나 사우디아라비아로 이사 가자”고 한다는 것이다. 자신도 며칠 전 아이 학교에 갈 일이 있었는데 예전엔 아는 척하던 선생님들도 모두 고개를 돌리는 바람에 곤혹스러웠다고 한다. 아무도 그에게 말을 걸며 앉으라는 말 한마디조차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파키스탄에 사는 하크의 부모·형제와 피지로 결혼이민을 간 누나에게까지도 현지 경찰이 찾아가 탈레반 관련 혐의를 수사하는 바람에 온 가족이 고초를 겪고 있다고 그는 주장했다.

‘탈레반’이라는 무시무시한 피의사실이 공표되는 과정에서도 경찰은 미숙함을 드러냈다. 경찰청 외사형사계 관계자는 “구속영장에 적힌 범죄사실을 보고 언론이 취재해 기사를 확 쓰는 바람에 수사를 제대로 못 했다”고 말했다. 구속영장에는 출입국관리법 위반과 협박죄 혐의만 적혀있었고 탈레반 관련 내용은 없었다. 경찰은 구속영장을 본 기자들이 물어오니까 탈레반 관련 내용도 얘기해줬다는 것이다. 그러나 국민적 불안감이나 당사자 인권 문제를 놓고 봤을 때 물증도 없는 상황에서 말에만 의존한 혐의 사실을 언론에 공개한 것은 지나치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언론도 당사자나 그 가족, 지인 등에게 확인취재는 거의 하지 않고 기사를 썼다고 라시다와 하크의 측근들은 비판했다.

언론도 가족·지인 등 취재 않고 보도

이런 식의 인권침해는 텁수룩한 수염의 아시아 출신 외국인에 대한 편견이 팽배하고 한국 사회도 언제든 국제적인 테러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잠재적 불안감이 커져가는 상황에서 일상적으로 일어날 수 있는 사건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국가인권위원회 인권정책본부장을 지낸 박찬운 한양대 교수(법학전문대학원)는 “구체적인 범죄 혐의가 없는 사람을 그렇게 장기간 미행하고 도청한 것은 심각한 인권침해 행위”라고 지적하면서 “대한민국의 인권수준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사건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대구=글 전종휘 기자 symbio@hani.co.kr·사진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