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일 이주노조 사무실에서 아노와르 위원장을 만났다.
[사진-통일뉴스 김양희 객원기자]

지난 11월 20일자로 불법체류 미등록 이주 노동자의 신분이 돼 언제 추방될지 모르는 이주노조의 아노아르 위원장. 그는 지난해 4월 25일 창립총회를 열고 위원장으로 선출되며 이주노조 설립에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그러나 노조 설립 20일 후 바로 연행돼 1년여의 수감생활을 하고 질병으로 인한 일시보호해제로 석방됐다가 지난 6월 이주노조 총회에서 다시 위원장으로 선출된 아노아르 위원장은 현재 법원에 이주노조 설립신고 반려에 대한 취소 소송을 제출, 1심에서 패소하고 현재 항소를 진행 중이다.

언제 추방될지 모르는 상황에서도 이주노동자들의 인권을 위한 싸움은 물론 민주노총 산하 조직으로 비정규직 투쟁에도 누구보다 앞장서고 있는 이주노조 아노아르 위원장을 지난 1일 서울 중구 예관동에 위치한 이주노조 사무실에서 만났다.


인간다운 삶 위해 생존도 내던지다

36살의 아노아르 씨는 10년 전 방글라데시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돈을 벌기 위해 한국에 왔다. 9남매 중 8번째인 아노아르 씨는 처음엔 1~2년 정도를 한국에서 일하고 바로 돌아갈 생이었으나 인간 이하의 삶을 사는 이주노동자들의 인권 탄압에 그저 보고만 있을 수 없었다고 한다.

“나는 이곳에 노동운동을 하러 온 것이 아닙니다. 노동조합의 결성도 인간답게 노동권을 보장받는 것이 최종 목표이긴 하지만 우선은 우리의 존재감을 알리려는 것입니다. 지금 한국정부나 고용주들은 우리가 무슨 말을 하면 들으려 하지 않고 무시해버립니다.”

결혼도 하지 않고 직업도 없이, 마땅한 주거처 하나 없이 친구집 등을 전전하고 있는 것을 알고는 고향의 부모님들이 “고생 한다”며 “얼른 돌아오라”고 하지만 그는 그때마다 주변의 소중한 벗들을 위해 마음을 다잡는다고. 현재 이주노조 회원수는 300여명 정도. 전체 이주노동자가 350만 정도이니 큰 수는 아니지만 지난 1년 반 동안 회원 70여명이 추방당하는 등 열악한 환경에서 조직한 회원들이기에 소중하다. 또 이주노동자들이 아닌데도 자신의 일처럼 함께 연대해주는 사람들이 큰 힘이 된단다.

“방글라데시에서 학교 다닐 때 학생운동을 했었는데 그곳에는 운동단체가 당의 하위 조직이라 무조건 당의 결정에 따르게 돼 있어 운동단체가 힘이 없는데 한국에는 노동자, 학생, 농민 등 단체들이 서로 연대가 잘 되고 있습니다. 이주노조는 현재 일본, 대만, 네팔, 방글라데시, 미국, 캐나다, 독일 등의 이주단체들과 국제적인 연계를 하고 있으며 한국 내에서는 민주노총 서울본부에 직가입 해 얼마 전 전국노동자대회에 참가 했으며 민노당 서울 시당과 아름다운 동행 연대의 밤 행사를 함께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비정규직도 이주노조와 똑같은 전철 밟아

최근 비정규직법안이 통과돼 노동계가 발칵 뒤집혔다. 아노아르 씨는 비정규직법이 이주노조의 고용허가제와 꼭 닮았다고 한다.

“고용허가제가 1년씩 연장을 해 최대 3년까지 있을 수 있고 3년이 지나면 무조건 본국을 다녀와야 하는데 이마저도 고용이 불안정하고 사업장 이동제한으로 사실 현대판 노예제나 다름없습니다. 그런데 2년이 지나면 정규직으로 채용을 한다는 비정규직법도 2년이 될 만하면 짤라 버려도 아무 말 못하는 것 아닙니까? 한국정부는 2년 후에는 정규직으로 되니 고용이 안정화된다고 말하지만 결코 그 말을 그대로 듣는 노동자는 하나 없습니다.”

특히 경기 불황이 지속되면서 이주 노동자들에 대한 인권 침해는 더욱 심각해졌는데 비정규직 노동자도 똑같은 전철을 밟을 것이라는 게 아노아르 위원장의 설명이다.

“그동안 우리는 무차별적 단속추방에 떨고, 숨고, 도망쳤으며, 그러한 공포에 사업장에선 불평조차 하지 못한 채 노예와 같은 삶을 강요받아왔습니다. 수많은 자료에서 말해주듯 이주노동자들은 고용허가제 이전보다 평균임금이 떨어지고, 노동환경은 더욱 나빠져 이주노동자들의 불만은 높아지고 있습니다. 이주노동자들의 안정된 취업을 위해 만들었다는 고용허가제는 실상은 누굴 위한 법입니까? 누구의 기본권을 지킨다고 만들어낸 법입니까? 마찬가지로 비정규직 법안은 누굴 위한 법입니까? 비정규직 근로자들도 우리 이주 노동자들과 똑같은 전철을 밟을 것입니다. 노동자들은 모두 연대해야 합니다.”


UN 사무총장의 나라 인권침해 심각

반기문 외교통상부 장관이 UN의 사무총장이 됐다고 온 나라가 들썩였다. 특히 UN 사무총장의 나라에서 우리의 또 다른 반쪽인 북한의 인권에 대해 무관심하다며 UN 북한 인권결의안 채택까지 찬성을 했다. 그러나 정작 한국 내에서 인권침해에는 무심하다고 아노아르 씨는 말한다.

“한국의 문화나 언어, 생활습관 등이 아직까지 익숙하지 않은 이주노동자들에게 체불임금, 사업장 내 폭언, 폭행, 산업재해, 사업장 변경 등의 일들이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습니다. 엠네스티가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현재 정부가 시행 중인 고용허가제는 극심한 임금차별과 사업장 이동 및 결사의 자유를 제한하며 불법체류자에 대한 체포. 구금, 추방과정에서의 인권침해가 국제 인권기준을 현저히 벗어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특히 2006년 고용허가제 도입을 전후로 불법체류자에 대한 단속을 강화하는 과정에서 출입국관리소 직원들에 의한 구타 및 언어폭력 사례가 드러나면서 인권침해 논란이 일기도 했습니다.”

이주노조 측은 4일, UN의 인권특별수사관이 방한하면 면담을 통해 한국 내의 인권탄압 사례를 알려 사무총장의 나라부터 인권문제를 해결하도록 할 계획이다.


18년간 변한 건 하나 없어

중소기업의 인력난을 해소하기 위해 도입된 산업연수생 제도로 이 땅에 이주노동자가 처음 들어온 것이 지난 1993년. 그러나 이주노동자들에 대한 임금체불, 송출비리, 불법체류자 양산 등의 문제가 유발하자 정부는 대안으로 고용허가제를 내놓고 올해로 시행 2년째를 맞고 있다. 그러나 지난 18년간 변한 것은 하나 없고 오히려 상황은 더욱 악화되고 있단다.

“실제로 엠네스티가 지난 1월 구금되어있는 이주노동자들을 대상으로 조사를 벌인 결과 구금 노동자 중 20%가 구타당한 경험이 있고 40%가 언어폭력으로 고통 받은 것으로 드러난 바 있습니다. 국제 엠네스티의 조사결과에 따르면 한국에서 일을 하고 있는 여성 노동자의 경우 전체의 12%가 성폭행을 당하고 15%가 임신을 했습니다. 또 54%는 성폭력의 압박에 시달린 적이 있다고 합니다. 이로 인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례도 많고 연행 중에 폭행을 당하는 비인권적인 사례도 끊임없이 보고되고 있습니다. 이런 문제는 이주노동자 스스로 해결할 수 없기에 이주노동자들의 사후관리는 매우 중요한 문제입니다.”

이주노동자 문제는 오로지 노동자의 시각으로 바라봐야 해결 가능한 문제로 고용 중심, 사용자 중심의 이주노동자 정책은 심각한 이주노동자 탄압을 묵인할 뿐이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이주노동자가 보는 한미FTA

최근의 한미FTA 협상을 바라보는 아노아르 씨의 시선이 곱지 않다. “우리는 외국인일 뿐이지 원하는 것이나 권리가 똑같은 노동자”라고 말하는 아노아르 씨는 “한미FTA 협상이 체결되면 똑같은 노동자인 한국의 농민들이 일이 없어지고 실업자 신세가 돼 더욱 힘들어질 것입니다. 잘 사는 사람들은 더욱 잘 살겠지만 못사는 사람들은 더욱 못살게 되니 어떻게 찬성할 수 있겠습니까? 인간은 누구나 똑같이 살아야 합니다. 다른 나라도 미국이 강제로 FTA를 체결 했으나 미국 외의 국가가 긍정적인 효과를 본 나라가 없습니다. 또 북한 이란 등 미국이 무시하던 나라들이 점점 힘이 세져 미국은 골치가 아플 것입니다. 미국은 앞으로 정신을 차려야 할 것입니다”라고 말한다.


이주노동자가 말하는 통일이야기

아노아르 위원장은 사실, 한국의 통일문제에 아직 잘 모르고 고민을 해 본 적이 없다. 그러나 어떤 이유에서건 전쟁만은 안 된다는 그.

“정치적 문제건 종교, 이념적인 문제건 간에 어떤 이유에서라도 전쟁이 발생하면 가장 큰 피해를 입는 것이 죄 없는 여성과 어린아이들입니다. 북핵문제를 비롯, 어떠한 이유라도 전쟁을 합리화할 핑계는 없습니다. 어서 빨리 평화적으로 문제를 해결해야 할 것입니다.”

‘갑자기 매서운 날씨가 춥지 않냐?’는 기자의 질문에 그는 “지난 2003년, 한국 정부의 고용허가제에 반대하며 380여 일 간의 명동성당 투쟁 이후 추위도 안타고 강해졌다. 이제는 고향에 돌아가면 오히려 더울 것 같다”며 웃는다.

1년에 한 번 씩 있는 이주노동자들의 축제인 이주노동자의 날 행사를 오는 12월 17일에 치를 계획으로 요즘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는 아노아르 씨.

이제 한 번 추방되면 다시는 오지 못할 한국 곳곳에 정이 많이 들어 걱정이라는 그는 주변의 소중한 사람들에게 일일이 인사 하지 못하는 대신 지면을 통해 고마운 인사를 전한다.

(이 인터뷰 기사는 추모연대 소식지 <열사회보> 11, 12월호와 함께 나갑니다. / 편집자 주)  
2006-12-11 통일뉴스  김양희 객원기자 (tongil@tongil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