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일보 2005/08/10일자 0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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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노예'를 허가했다
외국인 고용허가제 시행 1년째 …
'이주노동자 인권연대' 면접조사 결과
업무과중·인권침해 여전…63.3% "사업장 떠나고 싶다"


  
지난 3월 한국에 들어온 필리핀 여성노동자 T씨. 하루 11시간을 일하고도 월급은 65만원밖에 받지 못한다. 입국 전 필리핀에서는 8시간 근무에 기본급 65만원을 받고,기숙사 비용과 식비는 회사가 부담하는 계약서를 작성했지만 한국에서의 사정은 영 딴판이었다.

매일 3시간을 초과근무해도 지금껏 잔업수당을 받아본 적이 없다. 더구나 기숙사 전기와 수도 요금도 직접 내고 있다. 매 끼니 비용도 마찬가지다. 경기도의 한 업체에서 일하고 있는 스리랑카인 K씨는 한국말을 몰라 작업 지시를 잘 알아듣지 못했다.

담당 과장은 어리둥절해 하는 K씨의 머리를 주먹으로 서너 차례에 걸쳐 심하게 내리쳤다. 폭행으로 머리에 타박상을 입은 K씨가 치료를 요구하자 과장은 "한국에는 외국인을 때려도 되는 법이 있다"고 버티며 "참지 못하겠으면 니네 나라로 돌아라가"고 협박했다.

이들은 모두 고용허가제를 통해 입국한 외국인노동자들이다. '현대판 노예제'로 불려 온 외국인 산업연수생제도의 폐해를 치유하기 위해 도입된 외국인 고용허가제가 시행 1년을 맞도록 제대로 정착되지 못하고 있다.

외국인 노동자들은 제도적으로는 노동자의 권리와 지위를 인정받게 됐지만 여전히 차별과 인권침해에 시달리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는 '부산 외국인노동자인권을 위한 모임'을 비롯한 전국 12개 외국인노동자 지원단체 네트워크인 '이주노동자 인권연대'가 고용허가제를 통해 입국한 외국인노동자 134명을 상대로 면접조사를 실시한 결과를 담은 고용허가제 시행 1년 실태조사 보고서에서 적나라하게 확인된다.

보고서에 따르면 조사 대상 외국인노동자의 42.4%는 법정근로 시간을 훨씬 초과하는 1일 평균 12시간,주당 최소 60시간 이상의 과도한 노동으로 내몰리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월 평균 휴일 일수가 3일 이하인 노동자도 전체의 21.9%에 달했으며,한 달 내내 하루도 쉬지 못하는 경우도 7.6%나 됐다.

전체의 16.2%는 1일 8시간 기준,월 64만1천840원인 최저임금에도 못미치는 저임금을 받으며 노동을 착취당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76.3%는 상여금 혜택을 전혀 받지 못하고 있다.

또 응답자의 49.6%가 외국인등록증과 여권을 회사에 불법으로 압류당한 것으로 조사돼 이동의 자유를 침해당하고 있었다.

과중한 업무와 저임금,고용주의 언어적·물리적 폭력에 시달리다 못해 전체의 63.3%가 사업장을 이동하고 싶어 했다.

이주노동자 인권연대는 10일 오전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실태조사 보고서를 공개하고 "고용허가제는 외국인 노동자를 노동자로 인정함으로써 차별해소와 인권개선을 제도화 한 점에서 의의가 크지만 시행 과정에서 많은 문제점을 드러내고 있다"며 보완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이현우기자

hooree@busanilbo.com